19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1749~1827)는 이세상의 모든 변수를 계산할 수 있다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그러나 누가 그런 계산을 할 수가 있을까.
그는 초자연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를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부른다.
20세기를 마감하던 지난 연말,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라플라스의 악마'를 불러낸 듯한 가상 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주인은 미즈 포어사이트(Ms Foresight). 굳이 번역하면 선견(先見)이란 이름이다.
그녀는 전세계 금융시장과 귀금속 시장의 가격변동을 완벽하게 예견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그 능력을 발휘하여 20세기 내내 투자를 거듭한 성적이 기사의 내용이다.
그 계산에 의하면 세기 초 1달러였던 그녀의 재산은 세기말 960경(京) 7190조7816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IMF 직전 우리나라 국부(國富) 총계가 3조 달러대(319조원)였던 것과 비교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미즈 포어사이트의 1998년의 주(主) 투자대상이 우리나라 증권시장으로 되어 있음이다. 수익율은 141%였다. IMF 틈에 한 몫을 챙긴 셈이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입맛이 쓰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335만명을 넘어선 우리나라 증권투자자(99년)로서는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지금 대박을 쫓다가 쪽박을 찼다는 후회에 젖어 있다. 게다가 증권투자를 둘러싼 정부 감독기관의 비리와 정경유착 의혹이 그들을 분노케 한다.
작년 말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재(財)테크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라플라스의 악마'가 아닌 이상, 투자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땅의 재테크는, 재테크라 하기에는 너무나 허황된 것 같다. 차라리 그 것은 돈치기에 가깝다. 보이느니, 공 들이지 않고 공돈을 잡겠다는 도덕성의 위기 뿐이다.
그 단적인 보기를 우리는 개장 2주일을 넘기고 있는 어느 폐광촌 카지노에서 보고 있다. 호텔 방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꾼'이 몰리고, 하룻 밤 사이 수천만원을 날리는 패가(敗家)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 곳 말고도, 경마요, 경륜이요 하는 공영 도박은 또 얼마나 성한가.
마찬가지 기풍을 우리는 복권시장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나라와 지방자치 단체가 앞장을 서서 명분과 핑계만 있으면 무작정 복권을 발행한다. 몇10억원대 복권규모를 경쟁한다. 새해부터는 인터넷 복권도 발행할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 보니, 지금도 복권사이트가 166개나 된다. 과연 복권천국이 올 모양이다.
공짜와 덤을 좋아하는 세태는 도처에 널린 경품에도 잘 나타난다. 역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경품의 응모, 당첨여부 확인, 경품수령을 대행하는 유료사이트가 67개나 성업중이다. 그 중 한 사이트가 망라해 놓은 경품만해도 자그마치 840건, 그 중 24건은 경품 가액이 1억원 이상이다. 공짜가 지천으로 깔려 있음을 마냥 좋다고만 해야 할까.
결국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모두가 공짜와 덤을 찾아 다니는 꼴이다. 마찬가지로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에 기대어,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를 핑계로, 공짜와 덤을 챙긴다고 해서 무엇이 이상할까.
학자들은 이런 것을 카지노 자본주의라 이른다. 막스 베버는 이를 천민 자본주의라 이름했다. 숫제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런 뜻에서, 작금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니라, 체제의 위기라고 해야한다. 그 근본원인은 우리 경제의 천민성에 있다. `문민'을 말하고 `국민'을 말하면서, 우리는 천민의 시대를 살고 있는 꼴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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