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떠도는 유행어 하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서울에 오지 못하는 이유는? ”정답은 이렇다. 서울에는 `총알'택시가 횡행하며 `핵'가족이 많고 사람들이 `폭탄'주를 마셔대기 때문에 무서워서 못 온다는 것이다. 골프 치는 사람들은 `미사일'드라이버를 추가해 네 가지를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말도 참 잘 만들어낸다.그러나 정작 폭탄주를 무서워해야 할 사람은 우리 공직자들이다. 이미 폭탄주 때문에 여러 사람이 망신 당하고 하루 아침에 목이 잘리지 않았나.
그런데도 폭탄주실언은 사라지지 않는다. “양주가 독해서 맥주를 타서 마신 것”이라는 명언을 한 검찰간부가 있었지만, 최근엔 외교부장관까지 이 대열에 가세했으니 폭탄주의 위력은 역시 대단하다. 단시간 내에 함께 취하고 스트레스 풀기에 즉효인 폭탄주로 호기를 부리다 보면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다. 공인의 실수는 파장이 크며 국가적 망신으로까지 비화된다.
그런데 폭탄주를 안 마시고도 헛소리 흰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검찰을 통해 정치판을 개혁하려 했다거니, 검찰에 이야기해 기소대상자를 줄였느니 하고 말한 여권 인사들은 분명 맨정신이었다. 밖에 나가서 입조심하라는 부인의 충고까지 소개한 강연에서 또 실언을 한 통일부장관이나 인터뷰를 통해 북한사회를 비판한 한적총재의 발언 역시 맨정신이었지만 신중하지 못했다.
불필요한 말도 많이 한다. 여권의 고위실세들은 4ㆍ13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남북관계에 중대한 진전이 있는 것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을 흘렸었다. 언론이나 국민이 대부분 선거전략이라고 치부하고 말았지만 제대로 취재가 됐다면 6ㆍ15 남북정상회담은 성사 전에 보도됐을 것이고 그 파장은 컸을 것이다.
요컨대 고위 공직자들은 공무상 취득한 기밀을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지러웠던 것이다. 정상회담 후에 빚어진 여러 고위인사의 부적절한 언행 역시 입이 원수였다. 여권과 고위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잇단 실언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키는 자해행위다. 최근의 각종 실언과 설화(舌禍)는 정리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공직자들이 젠 척 하려 하는 언행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언론이 과장ㆍ확대보도한 것”이라거나 진의가 왜곡됐다고 부인하거나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과장과 왜곡이 부분적으로 있을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 언론이 늘 그런 장난만 한다는 말인지…. 사석과 공석을 구분할 줄 모르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과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 몸가짐이 미분화상태인 사람들이 흔히 그런 말을 한다.
기자란 원래 말을 캐고 말을 줍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공직자들 스스로 입조심을 하자며 `기자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는 공인들이 많지만, 이와 반대로 필요한 말을 제때에 제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들의 말만 믿으면 뭐든지 잘돼 가는 것같고 문제가 있어도 금세 해결될 것같은데 사실은 그게 아니어서 문제다.
국민의 피와 땀을 요구했던 처칠의 명연설은 배우가 녹음한 것이라고 해서 최근 화제가 됐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보다 연설에 담긴 메시지다. 잘된다고만 하지 말고 솔직하게 실상을 털어놓고 국민의 협조와 참여를 촉구하는 말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사태의 본질을 덮어둔채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하거나 장래는 낙관해도 좋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는 공직자들은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이라고 했다. 입이 화를 부르는 문이라는 뜻이다. 입이 도끼라는 말도 있다. 되도록이면 말을 아끼고 진짜 할 말을 하라. 이 난국에, 국정운영에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는 공인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을 팽개친 폐인처럼 폭탄주에 휘둘리지 말고 흐트러진 속옷이 보이지 않게 소매부터 다시 여밀 일이다.
편집국 국차장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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