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미야기(宮城) 현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도호쿠(東北) 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은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60~70만년 전의 석기를 날조한(6일자 사회면) `배포'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그는 미야기현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에서 올해 발굴된 유물 65점 중 61점, 홋카이도(北海道) 소신후도자카(總進不動坂) 유적에서 출토된 29점 모두를 날조했다고 실토하면서도 더 이상의 날조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고고학의 신뢰성을 뿌리채 흔든 그의 말이 곧이 믿길 리가 없다.
그가 관여한 발굴은 물론 모든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 작업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데 국민과 학계, 당국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언제나 같은 사람이 깨끗한 상태의 유물을 발견, 이상하게 여겼다"거나, "현장에서 복수의 연구자가 자세하게 검증했으면 충분히 진위를 가릴 수 있었다"는 등 학계의 뒤늦은 자탄은 "그럼 왜?"라는 의문만 부추긴다. 단서는 있다.
주류 학계는 뒤늦게 "일본에 전기 구석기시대 유물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애초에 연대 측정의 결정적인 방법이 없었다"며 "아시아 대륙에서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과 같은 연대의 석기군이 발견되지 않아 아예 언급을 피해 왔다"고 밝혔다. 아마추어 연구자 모임인 도호쿠 구석기문화연구소와 도호쿠대학이 손잡은 발굴 작업을 일부러 외면해 왔다는 얘기다.
주류 학계의 이같은 침묵은 일본의 구석기 시대를 60만년 전으로 끌어 올린 교과서의 기술로 보아 학계의 자존심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이번 사건은 결국 일본 열도의 `사람 흔적'을 조금이라도 거슬러 올리려는 집단적 강박 관념과 여론의 압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하긴 눈앞의 현대사마저 '아시아 공생을 위한 선택'으로 덧칠되는 마당에 옛 원인(原人)의 발자취쯤이야 더 간단한 일이었던 지도 모른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a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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