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야당의원이 정현준 사설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소문이 난 여권 실세의 실명을 거론한 일을 둘러싸고 여야가 다시 반목하고 있다.실망스럽고 한심한 일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한나라당 이주영의원의 소행을 면책특권을 악용한 정치공작으로 규정하면서 법사위 대법원 국감을 거부하고 이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민주당 이원성의원의 `검찰 정치개혁' 발언을 문제삼아 이는 이 정권이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생각하고 검찰 스스로 정치개입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당내 특위의 구성, 특별검사제 요구 등 강력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또 다시 상대방을 얼굴을 할퀴고 반목하는 졸렬한 대치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행태는 집권당으로서의 최소한의 금도를 저버린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동방금고 사건'의 파장이 여권의 실세로 연결되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하더라도 민주당의 대응은 뺨맞고 머리채를 잡아채는 싸움박질같은 느낌을 줄뿐이다. 동방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이런 식으로 벗어나려 했다면 더 더욱 안될 말이다. 물론 야당도 그리 떳떳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만일 한나라당이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항간의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면책특권을 이용하여 사실여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면 이는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다. 불의에 맞서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려는 충정보다는 필마단기로 적진에 뛰어들어 수장을 찌르고 오겠다는 한탕식 영웅주의의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수사가 진행중인 사건을 국정감사와 면책특권이라는 헌법제도를 통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못미더웠더라도 먼저 검찰의 수사결과를 기다려야 하지 않았을까. 항간의 소문만을 근거로 실명을 거론한 측이나 이에 발끈하여 당사자를 형사고발하는 쪽 모두가 잘못이다.
이런 메마른 성미로 졸렬한 대치를 또 얼마나 하려 하는가.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한국경제의 신인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소치임을 여야는 모르는가.
외국에서 본 우리 나라의 모습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건만 매사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행보로만 보이고 경제가 활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의혹을 보내는 눈초리가 많다. 그 와류에서 한국호의 항진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권이다.
경제의 위기는 정치의 마비와 무관하지 않다. 졸렬한 정치는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국민은 고단하고 시장은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결국 또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
해법은 결자해지에 있다. 야당은 면책특권 뒤에 숨으려 하지 말고, 수사중인 사건에 관하여 사실에 의거하지 않고 실명을 거론한데 따른 결과에 대하여 정치적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원성의원의 경우는 그의 변명을 받아주고 검찰의 정치개입이라는 모험주의를 엄중히 경고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자.
여당은 걸핏하면 검찰에 고소ㆍ고발이나 하는 졸렬한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꾸만 검찰에 문제해결을 의뢰하니까 검찰의 정치개입문제가 더욱 더 불거지는 것 아닌가. 여당의 이런 행태는 검찰의 대다수도 결코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한때 활용했던 면책특권을 들먹이지 말고 집권당으로서의 금도를 회복하여 정치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형사고소를 취하하고 정치협상을 통해 앞으로 서로 상대방에 대한 근거없는 모함을 하지 않겠다는 신사협정을 체결하자. 신랄한 비판과 토론 속에서도 상대방을 최소한 존중하는 것을 정치의 불문율로 만들자. 국민의 입장에서, 하도 답답하여 하는 말이다.
홍준형ㆍ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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