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기 구석기시대 유물의 연대를 70만년전으로 끌어 올려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발굴 성과가 공명심에 눈이 먼 고고학자의 날조극으로 밝혀졌다.마이니치(每日)신문은 5일 미야기(宮城)현 쓰키다테초(築館町)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 발굴 현장에서 발굴 조사단장인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ㆍ50) 도호쿠(東北)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이 몰래 석기를 땅에 묻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했다.
10월27일 70만년전의 석기가 발굴됐다고 대서특필되기 5일전인 10월 22일 아침의 일이었다.
그는 마이니치신문의 취재에 대해 “마(魔)가 끼었다”며 이 유적에서 올해 발견된 6개 유구(遺構)와 유물 31점 중 27점을 모두 날조했다고 시인했다. 또 홋카이도(北海道) 소신후도자카(總進不動坂) 유적에서 올해 발굴된 석기 29점 모두가 자신의 석기 수집품을 묻은 것이었다고 실토했다.
후지무라 부이사장은 1992년 8월 목초지 개간을 위해 파헤친 가미타카모리의 구릉에서 석기를 발견한 이래 1993년부터 이곳에서 40만년전, 50만년전, 60만년전의 석기를 잇달아 발굴, 일본 최고(最古) 석기 기록을 연례행사처럼 경신해 왔다.
일본 고고학회는 이 성과는 물론 그동안 그가 관여한 140개소의 유적 발굴에 대한 재평가를 서두르고 있다. 또 그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2월 사이타마(埼玉)현 치치부(秩父)시 오가사카(小鹿坂) 유적에서 발굴된 40~50만년전의 세계 최고급 유구 등 전기구석기시대 유물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후지무라 부이사장은 고교 졸업후 독학으로 고고학에 투신했다. 1972년부터 발굴 작업에 참가, 1981년 미야기현 자자라기(座散亂木) 유적에서 당시로서는 최고(最古)인 4만 수천년전의 석기를 발굴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동안의 발굴에서 그가 파 보라는 곳을 파면 늘 유물이 나와 `석기의 신' `신의 손'으로 불렸다.
그의 자작극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석기의 연대 측정법이 아직 애매한 데다 석기의 형식보다는 발굴된 지층의 연대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일본 고고학계의 해묵은 관행 때문이었다.
일본사의 연대를 위로 끌어 올리려는 일본 고고사학계의 퐁토도 일조했다. 일본에 12만년전 이전의 전기 구석기시대 문화가 있었느냐에 대한 오랜 논쟁이 매듭된 것도 자자라기 유적에서 그가 발굴한 석기에 의해서였다.
따라서 고교 역사 교과서에 실리고 대학입시에 출제되기까지 한 일본의 전기 구석기시대 문화 전체에 대한 재검토와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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