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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김형철-박정수 교수 "또 공직비리… 막을길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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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김형철-박정수 교수 "또 공직비리… 막을길은 없나"

입력
2000.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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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공직비리 사건이다. '정현준ㆍ이경자 의혹사건'에서 드러난 금감원 국장의 수뢰사실은 우리 사회 부패상의 극치를 보여준다.더 많은 공직자들이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의혹만 무성한 가운데 국민들 사이에서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지켰다'는 자조가 터져나오고 있다. 공직자가 권한을 바르게 쓰도록 하려면 무슨 방법이 있는지, 반부패국민연대의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두 명의 교수에게 들어보았다.

▲김형철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뒤 91년부터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회정의와 윤리문제를 주로 연구했으며 한국기업윤리연구회 회장과 국제기업윤리학회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사회의 도덕개혁' 이 있고 `사회적 이상과 공직자 윤리' 등의 논문을 썼다.

▲박정수

1962년 서울에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행정대학원을 나왔고 1992년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연구위원을 거쳐 1997년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조세체계 정비에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현재 서울시립대 반부패행정시스템연구소 연구부장으로 `기업부패지수측정 모형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_'정현준 비리의혹 사건'이 급기야 장래찬 전 금감원 국장의 자살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박정수= 안타깝습니다. 그 분이 국민 앞에 나타나 잘못을 반성하고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 공무원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를 바랐는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김형철= 동감입니다. 이제라도 철저히 조사를 해서 진실을 밝히고 부정부패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방안을 강구해야죠.

_공직자와 기업의 부패고리가 또다시 드러났습니다.

▦박정수= 올해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e InstituteㆍTI)가 발표한 투명성지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90개국 중 48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을 대상으로 `어느 나라 공직자들이 더 뇌물에 거부반응을 갖는가'를 조사한 뇌물인식도(Bribery Perception Index)는 지난해 조사결과 19개국 중 18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부패정도는 그야말로 참담한 지경이지요.

▦김형철=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부패 정도가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합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선 덮였을 사건들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지 특별히 나빠진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오히려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봅니다. 전에는 부정부패가 국가의 경쟁력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중시하는 글로벌화 시대에 이를 어기는 부정부패는 치명적인 오점이 됩니다. 투명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에서 예전엔 더 심했는데 요즘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식의 발상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박정수=특히 우리나라처럼 무역의존도가 80%가 넘는 나라에게 투명성은 생존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저 나라는 부패한 나라다'라는 이미지가 한번 국제사회에 각인되면 `언제든 덤핑이나 뇌물을 트집잡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줘 세계 시장에서 늘 불리한 조건에서 거래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포드사가 왜 대우자동차 인수를 포기했는 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폴란드나 헝가리에서는 대우자동차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데 내막을 알아보니까 기업의 경쟁력 때문이 아니라 현지 관료들이 다른 외국 기업의 진입을 막고 있다는 거예요. 그 배경은 뻔하지요. 누가 이런 기업을 인수하겠습니까.

_도대체 우리 기업과 공직자가 왜 이렇게 됐습니까.

▦박정수=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 교수, 변호사, 공인회계사, 기업체 간부 등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왜 뇌물을 주고받는가'라는 질문을 했더니 33.6%가 `사회의 부패관행이 일반화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안주면 일이 안되니까, 남들도 다 주니까'라는 생각에서 뇌물을 건네고 공직자들은 이를 `관행'으로 여기고 받는 것이지요.

▦김형철 =저는 이런 관행을 `압축 근대화의 병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서구사회가 200~300년만에 이룬 산업화를 30~40년만에 이뤄야 했으니 모든 것이 정부 주도였고, 효율성이 최우선이었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심판에 머물러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정부가 코치에, 선수까지 도맡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사업하는 사람들은 공직자에게 줄을 대기 위해 발버둥을 쳤고 당연히 검은 고리가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거죠. 그리고 효율성이라는 명분에 가려 공정성은 아예 무시됐습니다.

▦박정수 =개발시대에는 정부주도의 산업정책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민간에 맡길 것은 과감히 맡겨 공직자의 영향력을 줄이는 데서 공직자 부패의 청산이 시작되는 겁니다. IMF사태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관치금융이었습니다. 시장이 자금의 흐름을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재경부 등 정부가 이를 결정해왔습니다. 먼저 관이 해야 할 일과 기업이 할 일을 구별해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최근의 예를 들면 소액주주 집중투표제나 집단소송제 등은 정부가 나서 입법화하고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거꾸로 산업구조조정처럼 시장에 맡겨야 하는 일에 정부가 손을 대고 있는 게 작금의 상황이지요.

_부정부패를 일소할 충격요법 같은 것은 없을까요.

▦김형철 =뇌물을 주고 받는 행위를 각자 다른 방에서 취조를 받는 `수인(囚人)의 딜레마'와 인질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뇌물을 주는 기업가는 경쟁자가 혹시 줄까봐 주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뇌물을 받는 공직자는 당연히 할 일을 인질로 삼아 뇌물을 받아야만 해주는 것이지요.

따라서 뇌물을 받는 공직자 뿐 아니라 뇌물을 주는 사람도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뇌물죄에 대한 처벌강도를 높여야 합니다.

하지만 뇌물거래라는 것이 워낙 은밀하게 이루어져 대부분 내부고발자에 의지해 색출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엔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내부고발을 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내부 비리를 목격할 경우 또 고발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다시는 하지않겠다”는 대답이 태반이었다고 하더군요. 조직에서 왕따를 당하고 협박을 받아 심리적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지요. 이런 풍토에선 내부고발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박정수= 워싱턴에서 유럽연합(EU)에 근무하다 EU의 내부 문제를 고발했던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 얘기는 그 쪽 사회는 내부고발자를 위한 법적 보호장치도 잘 마련돼 있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도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내부고발자가 나오면 그 사람을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해 버리려고 하죠. 우리가 오랜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한 서구사회를 당장 따라갈 수 없다면 싱가포르나 홍콩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 나라들은 부패지수 조사에서 늘 1ㆍ2위를 차지할 만큼 공무원의 부패가 없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들은 공무원들에 대한 대우가 좋은 대신 일탈행위를 했을 때는 징역형은 물론 몇 년간 취업이 금지되는 등 처벌이 아주 가혹합니다.

▦김형철 =우리나라가 싱가포르 등의 예를 따르려면 우선 과거와의 과감한 단절을 위해 공직자 비리에 대한 대사면령이 한번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년 정도 유예기간을 둬 그 안에 과거의 비리를 자진신고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공개한 뒤 그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않는 방식이지요.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 새출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 전비(前非)에 집착하는 개혁은 소모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발생하는 비리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무겁게 처벌하면 됩니다. 아울러 모든 정부 조직의 감사직은 기관장이 임명이나 파면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임기를 철저히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수 =정보화가 조직의 투명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마전으로 알려졌던 서울시에서 `오픈시스템'이라는 것을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영업허가 신청을 냈으면 그것이 처리되는 전과정을 3일 이내에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행정절차를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것도 비리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우리사회는 도덕적으로 `낮은 균형'의 덫에 걸려 있습니다. `높은 균형'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IMF체제가 그런 좋은 기회였는데 놓쳐버렸죠.

▦김형철=저는 국민의 정부가 대통령의 임기 내에 뭔가 보여 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지 말고,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는 자금세탁방지법이나 반부패특별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지속적으로 부정부패를 제거할 수 있는 터전을 닦는데 힘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유성식기자

ssyoo@hk.co.kr

정리=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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