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유예 면죄부인가, 아니면 시장의 냉혹한 정글논리에 내던져진 것인가.`11ㆍ3 퇴출'의 핵심이었던 현대건설과 쌍용양회가 동시에 등급판정이 보류된 채 일단 회생의 길을 걷게 되면서 정부와 채권단의 진의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측은 “채권단의 자금지원이 중단된 만큼 현대측이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면 퇴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혀 회생을 전제로 한 결정이 아님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금까지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막대한 특혜만 준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현대건설과 쌍용양회는 기존의 1, 2, 3a, 3b 4개 등급과 별도로 채권단으로부터 `3-기타'로 분류됐다. 3등급, 즉 구조적 유동성 위기가 있는 기업으로 분류됐지만 a(자구계획 전제 회생), b(정리) 등 어느 쪽에도 편입시킬 수 없어 편법을 이용했다는 얘기다.
채권단은 유동성 위기가 구조적이지만 강도 높은 자구계획의 보강과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금융기관들이 신규지원없이 기존 차입금에 대해 만기연장을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단 자구이행 실적이 부진해 유동성 부족 사태가 다시 발생할 경우 즉시 법정관리 처리하겠다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다는 점에서 `기타'로 분류됐다는 설명이다.
외환은행 이연수(李沿洙) 부행장은 “금융기관 차입금은 모두 만기연장이 이뤄지지만 물품대금에 해당하는 진성어음은 자체 자금으로 막지 못하면 부도처리 뒤 법정관리로 가게 된다”고 말해 사실상 최후통첩임을 강조했다.
문제는 현대건설과 쌍용양회에 대한 이같은 처리 방침이 사실상 `부도유예협약'과 다름없다는 점이다. 현대건설에 대해 50억원 이상의 여신을 갖고 있는 15개 은행은 이미 현대 여신에 대해 연말까지 만기연장을 해주기로 합의한 상태다.
6~7일께 제2금융권까지 포함하는 전체 채권금융기관 협의회에서 이같은 내용이 통과될 경우 금융기관이 만기 기업어음(CP)을 돌려 부도가 나더라도 아무런 제재없이 정상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협의회에서 부결이 될 경우 부도 처리 뒤 법정관리로 갈 수도 있지만 외환은행측은 통과확률이 90% 이상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쌍용양회에 대해서도 현대건설과 마찬가지로 제2금융권을 포함한 모든 금융기관이 연말까지 만기연장을 해줄 방침이다. 채권단측은 “부도가 나더라도 형식적인 것일 뿐 불량거래처 등록 등의 제재가 전혀 없어 만기어음을 돌리는 금융기관도 없을 것”이라며 “진성어음에 대해서는 부도가 인정되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상 부도유예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 한 관계자는 “결국 현대건설과 쌍용양회라는 대마(大馬)를 쓰러뜨리기 부담스러웠던 정부와 채권단이 편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며 “확실한 자구안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특혜를 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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