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7년 오늘 독일의 낭만주의 작곡가 야콥 루드비히 펠릭스 멘델스존이 죽었다.1809년 생. 멘델스존의 아버지 아브라함 멘젤스존은 은행가였고, 할아버지 모제스 멘델스존은 당대에 널리 알려진 계몽주의 철학자였다. 그 3대의 이름 모제스, 아브라함 그리고 야콥이 드러내듯, 멘델스존가(家)는 유태계다. 음악가 멘델스존은 마흔도 못 채운 삶을 통해서 관현악곡 '이탈리아 교향곡'과 '스코틀랜드 교향곡', 오라토리오 '성 파울로' '찬미의 노래' '엘리야' 등 수많은 곡을 만들었다.
멘델스존의 작품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곡은 그가 열일곱살 때 서곡을 쓰고 서른 세살에 완성한 극음악 '한 여름밤의 꿈'일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같은 제목의 희극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작품 속의 '결혼행진곡'은 우리 귀에도 익숙하다.
멘델스존만이 아니라 유럽의 문화사는 유태인들의 이름으로 찬란하다. 특히 독일어권의 경우가 그러하니, 20세기 지성사의 세 수원지(水源池)라고 할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이다.
소설가 카프카와 츠바이크와 무질, 시인 릴케와 첼란, 작곡가 쇤베르크, 화가 클림트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학자들과 철학자 등 독일어권의 문화를 가꾼 유태인들의 이름은 기나긴 리스트를 이룬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어권의 문화나 학술이 영어권 특히 미국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쇠락한 데는 유태인들이 나치즘의 박해를 피해 대거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사정도 부분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끄집어낼 수 있는 교훈은 유태인의 천재성 신화가 아니다. 그것의 참다운 교훈은 다른 민족이나 인종에게 열려 있는 사회만이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종석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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