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몇 주 걸러 일요일마다 어느 할머니가 방문하는 소리이다. 헌신문지나 낡은 교과서 등 폐지를 받으며 반색하는 얼굴이 해맑다. 우리집에 오는 이 할머니는 사람을 잘 사귄다. 자주 보는 동네 새댁에게 인사를 나누며 고정 방문처를 많이 확보했다. 가끔 화장지도 한 통씩 사가지고 와서 감동을 준다. 그 동안 헌종이를 모아 놓았다가 주는 주인의 수고에 보답하는 것이다.■요즘 이처럼 동네마다 샅샅이 폐지를 거둬가는 사람들 때문에 거리가 깨끗해졌다. IMF관리체제 이전에는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엿이나 강냉이를 바꿔주던 이들이 헌신문지를 가져갔다. 작은 화물차까지 등장해서 거리를 돌며 수집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폐지 수집에 나선 할머니들 간 경쟁이 심해서 대문 밖에 내놓은 폐지들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손수레나 화물차가 돌기 전에 할머니들 차지가 되기 때문이다.
■기업 퇴출 소식이 찬바람과 함께 다시 몰아쳐 온다. 우수수 퇴직자들이 직장 밖으로 내몰리는 소리이다. 수십년 평생직장으로 삼고 청춘을 바쳐온 사업장이 문닫으면 그 나이에 갈 데가 없다. 겨우 마련한 집 한 채를 덜렁 끌어안고 살지만 얼마간의 저축도 곶감 빠지듯 사라지고, 그 다음엔 대책이 없다. 있는 옷만 입고 이미 사놓은 세간이나 쓰면서 살더라도 식비나 교통비는 나가야 한다. 학원비 등 교육비는 왜 그렇게 큰 돈이 드는지,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면 줄이기 어렵다.
■가난 속에서 자식을 길러 기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시키면서 아무 일없이 노년을 보내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다시 길에 나섰다. 체면은 넉넉한 이들의 사치일 뿐이다. 손자들 줄 용돈도 필요하고 동동거리는 며느리에게 가용으로 내줄 돈도 구해야 한다.
슈퍼 다닐 때 쓰던 작은 카트에 꽁꽁 묶은 헌신문지를 가득 싣고 오늘도 골목을 돈다. 힘에 겨워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떨어지는 폐지값이 걱정이나 그래도 내 힘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다. 비싼 자가용차를 타고가는 사람들이 빵빵대며 비키라면 비켜주고, 어느 문앞에 신문뭉치가 보이면 반갑게 달려간다.
최성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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