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멜로바탕에 무협무늬 '소문난 잔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멜로바탕에 무협무늬 '소문난 잔치'

입력
2000.11.03 00:00
0 0

11일개봉 단적비연수영화가 완성되기 전 이미 `소문난 잔치' 이다. `쉬리' 의 강제규 감독 제작, 순제작비 36억원, 2,500컷 촬영(평균 1,500컷), 촬영기간 9개월 등 일단 `규모' 면에서 화제가 만발했다. 제작사 뿐 아니라 CJ엔터테인먼트 등 투자사들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 최대 흥행작 `공동경비구역 JSA' 나 `쉬리'의 흥행신화가 다시 한번 재현될 것일까.

11일 개봉하는 `단적비연수'(감독 박제현)가 공개됐다. 영화를 보며 철기 시대 이후 과연 식인종이 있었을까, 부족적 정서가 강하게 지배하게 되는 시기에 과연 `사랑' 에 목숨 거는 정서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식의 문화인류학적 분석 따위는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은 `순정'으로 통한다.

`단적비연수'는 `은행나무 침대'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속편이다. 전편이 멜로와 전생을 독특하게 짜깁기 했다면, 속편은 멜로 바탕에 무협 무늬를 섞었다.

적과의 동침을 통해 얻은 딸을 제물로 바치는 비정한 어머니 수(이미숙)에게 `모성'이란 없다. 그에게는 딸의 피를 바쳐 화산족을 멸망시키는 열정 뿐이다. 그것은 운명이자 야생적 공간에서 생존의 법칙이다.

이런 법칙을 파괴하는 것은 단과 적 두 남자, 그리고 비와 연 두 여자이다. 그들에게 와서 비로소 `운명에 과연 순응할 것인가' 하는 이성적 사고가 생겨나게 된다. 야생에서 파생한 이성의 사고는 일종의 `이단'이다. 이 이단은 생소한 시대를 배경으로 했기에 더욱 애절해 보이기 조차 한다.

매족 족장의 위치를 버리고, 수와 야합까지 하는 적(설경구), 수를 사랑하면서 결국 그의 등에 화살을 꽂는 연(김윤진), 그리고 “죽음마저 함께 한다”고 맹세하는 단(김석훈)이나 “운명을 비켜갈 순 없나요”라고 울부짖으면서도 단을 위해 매족의 희생양을 자처하는 비(최진실)는 모두 야생의 시대의 이단적 존재들이다.

영화가 극적 재미를 얻는 것은 과연 누가 비를 차지할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남자의 사랑이 방식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다.

멜로, 혹은 순정 만화가 갖는 단조로움은 시공이 가늠되지 않는 영화적 공간을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다. 극적인 설화가 존재하지 않는, 고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전무한 우리 실정에서 `감히' 그 영역에 도전했다는 평가절상의 기회는 역시 덤으로 얻었다.

스타가 많이 출연했지만 새로운 이미지를 찾기는 힘들다. 자기 정열로 파멸되어 가는 설경구의 연기는 `박하사탕' 을, 사랑하는 사람에 활을 겨누는 김윤진은 `쉬리'의 종반부, 부드러운 사랑을 간직하는 김석훈의 연기는 드라마 `홍길동'의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계전통이 강하고 여전사가 많은데 유독 제 한 몸 가누지 못하는 연약한 최진실의 이미지도 조화롭지 못하다. `은행나무 침대' 의 속편이란 강박관념이 나름대로 홀가분한 결말을 방해하기도 한다.

`단적비연수'는 평가 받을 만하다. 비록 그 때문에 군데군데 사실성의 허점이 드러나지만, 그 시대 선택으로 영화는 감정의 원시성과 강렬함을 얻는다. “1m 이상 날면 안된다”는 감독 고집에 따라 효과에 의존하기 보다는 대역 없이 몸으로 부딪친 `아날로그' 액션 역시 땀이 느껴진다.

영양과 맛으로 구분한다면 `단적비연수'는 분명 후자 쪽이다. 그것도 꽤나 유혹적인 맛을 낸다. 순정만화식 인물과 상황이 주는 감각적 매력은 영화의 논리적 결함을 찾아내는 눈을 마비시킨다. 처음부터 작품적 가치보다는 흥행작으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그래서 `영화는 산업' 이라는 강제규 감독의 입김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주인공들이 말하는 '단적비연수'

"쉬리는 연습이었다"

5명의 주인공 단적비연수가 말하는 영화 `단적비연수'

단(김석훈) / 극중 캐릭터는 `적'의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소유하기 보다는 함께 존재하는 사랑의 방식을 드러내려 했다. 사려 깊은 연인이자 의리 있는 친구로서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적(설경구) / 처음엔 문어체 대사가 입에 겉돌았다. 테크닉이나 카메라 조작이 아닌 힘으로 하는 칼싸움 연기도 정말 힘이 들었다. 세상 모두를 버리고도 그 안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랑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비(최진실)/ “난 한번도 내 뜻대로 살아보지 못했어”(극중 대사). 최진실은 약혼자 조성민의 수술 간병차 미국에 가있어 시사회에 참석치 못했다.

연(김윤진) / `쉬리' 는 연습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몸의 연기가 많은 영화이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이라고 말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여인에게 보내주는 연기, 이런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

수(이미숙) / 천검이 마치 쌀 한 가마니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손에도 부상을 입었다. 멜로 영화에서 증오와 복수심에 찬 악역으로 영화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캐릭터다. 낯설고 힘든, 그러나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