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야 될 일과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일이 있다. 서로 지나치게 동떨어진 사례가 될지는 몰라도 핵폐기물 처리장과 박정희 기념관 건립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한다.핵폐기물 처리장은 아무리 반대가 있더라도 계속 논쟁을 일으켜서라도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사안이다. 핵폐기물은 그냥 놔두면 그 폐해와 위험이 더욱 커진다. 그러나 대통령 기념관은 빨리 짓지 않는다고 무슨 위험이 닥치는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놓고 논쟁이 심하다. 이곳에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허용한 것은 현 정부이지만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박정희 기념관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반드시 여야간 대립보다는 박정희 평가를 둘러싼 정서적 대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시장은 기념도서관만 허용하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기념관과 도서관을 어떻게 구분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아 논쟁은 이어질 전망이다.
■전직 대통령 기념관이나 도서관 건립은 미국에서 생겨난 것이다. 제퍼슨이나 링컨 같은 대통령의 기념관은 수도 워싱턴의 명물이 됐지만 거의 모든 대통령의 기념관이 고향이나 연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얼마나 정감 넘치는 대통령 기념관들인가. 사실 대통령 기념관이 수도에 있다고 그의 업적이 더 빛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향에 있다고 그 평가가 저감되지도 않을 것이다.
■박정희 기념관도 마찬가지다. 논쟁과 미움을 유발하며 서울에 하필 세워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살아서 정치를 할 적에는 권력을 위해서 대립과 갈등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죽은 후에 이런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고향 선산의 경치 좋은 곳에 건립된 박정희 기념관이 더욱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는 정치로 풀지 말고 역사로 푸는 게 순리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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