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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장래찬씨 죽음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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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장래찬씨 죽음이 남긴 것

입력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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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렇게 제목 붙인 독일 작가의 소설은 한 여인이 불륜 파트너가 사고로 죽자 애통해 하다가, 이내 자신의 죄를 아는 유일한 증인이 없어진 데 안도하는 내용이다.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장래찬 전 금융감독원 국장의 죽음에 이 여인처럼 안도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그의 죄과가 과연 죽음으로 갚아야 할 정도인가를 헤아리는 것은 비통에 젖은 유족에게 맡겨야 할 몫이다.

생명의 가치는 누구도 쉽게 평가하거나, 용훼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갖는 아쉬움은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결과, 그 목숨보다 귀한 다른 가치를 지키거나 구한 게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국민을 분노케 하고 국정을 어지럽힌 무리만 안도하는 부당한 결과를 남긴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관련자들의 모든 비리가 덮인 것으로 여기는 것을 우리는 경계한다. 그렇게 몰고 가서도 안된다. 그의 죽음은 의혹을 한층 키웠다. 그의 도피와 자살에 이른 여러 정황이 새로운 의혹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장씨를 불법대출과 조직적 비호 의혹에 열쇠를 쥔 인물로 부각시키면서도, 도피를 방조한 듯한 의심을 받았다. 검찰도 금감원 자체조사 결과를 기다리며, 그의 행방을 쫓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주변을 통해 출두를 종용하고 있다는, 이해할 수 없이 소극적 태도였다.

이런 정황에 비춰, 이제 금감원과 검찰은 진상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이미 드러난 여러 사실은 그의 증언이 없더라도 관련자를 밝혀내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장씨와 다른 관련자들이 비밀결사처럼 얽힌 사이가 아니고, 더구나 불법대출을 묵인하고 비호한 경위도 금감원의 공식기록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금감원과 정ㆍ관계 인사를 사설펀드를 통해 끌어들인 정현준 사장의 증언과 기록 등도 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드러난 관련자와, 소문 속에 숨은 인사들이 너무 많다. 결코 영원히 묻힐 수 없다는 얘기다. 장씨의 죽음도 관련자를 보호하려는 뜻보다는 혼자 책임을 뒤집어 쓰게 된 상황에 좌절한 탓으로 보인다.

검찰은 중대사건의 핵심인물을 빨리 붙잡지 못해 결국 자살에 이르게 한 데도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또 도피중인 그와 접촉한 인물들까지 밝혀내야 할 책임이 추가됐다. 검찰이 이제 이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면, 영원히 치욕으로 기록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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