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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찬씨 자살에 시민들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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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찬씨 자살에 시민들 충격

입력
200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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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준ㆍ이경자 로비의혹사건'의 핵심인물로 지목돼 온 장래찬(52) 금융감독원 전국장이 자살이라는 극한수단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검찰, 금감원은 물론 시민들도 큰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특히 장씨의 자살은 `사무라이(무사)식 자살' 성격이 짙어 정ㆍ관계와 금융계 등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식 자살'은 연례행사

일본에서 오직 사건과 관련한 공무원과 준공무원의 `책임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대표적인 예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총리가 총리 재직 시절 5억엔의 뇌물을 받았던 1976년의 록히드 사건 당시 '총리의 알리바이'를 쥐고 있던 운전기사의 자살이다. 79년 '더글러스 글라만' 사건에서도 항공기 판매 공작의 중심 인물이었던 닛쇼이와이(日商岩井)의 상무가 투신자살했다.

93년 '제네콘(종합건설사) 오직 사건'에서도 이바라키(茨城)현 하수도과장이 검찰의 조사를 받은 직후 자살했다. 98년 2월에는 재일동포 출신의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 의원이 구속 직전 호텔에서 목숨을 끊어 국내에도 충격파를 던지는 등 사무라이식 자살은 연례행사가 되다시피했다.

▲ 수사 미궁에 빠지는 경우 많아

'사무라이식 자살'은 일본의 봉건시대 무사들의 할복 자살 전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결백을 증명하거나 부당한 처사에 항거하기 위해 할복을 택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윗사람의 허물을 덮거나 수사에 시달리기 싫어 자살을 택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사건의 실상이 영원히 드러나지 않은 채 수사가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죽은 자의 뜻을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 내린 일본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론'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사무라이식 자살 이번으로 끝내야

국내에서도 97년 한보사건 당시 제일은행 박석태 전상무가 불법대출 외압을 폭로한 뒤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는 결백을 주장하려는 성격이 짙었다.

장 전국장도 유서에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정황으로 볼 때 조직을 보호하거나 비리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사무라이식 `책임자살'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연세대의대 정신과 전우택 교수는 “탈출심리, 속죄, 여러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생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사회 전체가 혼탁한 흐름 속에 있는데 자신만 더러운 것처럼 매도되고 있는 데 대한 분노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 윤 용 상임대표는 “검찰 수사의 심리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했거나 조직의 윗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친 것 같다”며 “일본식으로 허망하게 목숨을 끊는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이번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장래찬씨 최근 행적

장래찬 금융감독원 전 비은행검사1국장이 23일 잠적 이후 31일 서울 봉천동 여관에서 숨진 채 발견될 때까지 8일간의 행적은 고뇌 속의 도피로 요약된다.

이날 장 전 국장의 시신이 발견된 서울 봉천동 여관방에서 유서와 함께 발견된 `경위서'에는 `(자수용)'이라고 적혀 있어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수와 자살의 기로에서 고민했음을 짐작케 했다.

여관방에는 마시다 만 소주 2병이 놓여 있어 평소 술을 잘 못하는 장씨가 유서를 쓴 뒤 자살을 결심하며 괴로운 심경을 술로 달랬음을 말해준다. 1병은 5분의 4 정도가 비어 있었고 나머지 1병은 마개를 따지 않은 상태였다.

장씨가 잠적한 것은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KDL) 사장의 폭로로 `동방ㆍ대신금고 불법대출사건'이 터진 지난달 23일 오후. 이후 변사체로 발견된 31일까지 그를 본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장씨는 잠적 도중에도 24일과 25일 금감원에 수 차례 전화를 걸어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는가 하면 숨지기 하루 전날 밤 형에게 전화하기도 했다.

24일에는 금감원 김중회 비은행검사1국장에게 전화해 정 사장이 설립한 사설펀드에 출자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여러 의혹에 대해서는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씨는 이에 앞서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21일 평소 다니던 서울 강남 모성당에 혼자 들러 밀린 7개월분 헌금을 내고 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성당 L신부는 “매주 일요일 부인과 함께 왔는데 평소와 달리 토요일에 혼자서 왔었다”면서 “지금 생각하니 신변을 정리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형 래형(63)씨는 이날 “30일 오후 8시30분께 걸려온 마지막 전화에서 동생이 변호사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주며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내일 사무실로 가보라'고 했다”고 밝혔다.

당시 장 전 국장은 “형, 나 오늘 저녁 결심했어. 집사람과 아이들 잘 돌봐주세요”라고 말하는 등 통화 때마다 검찰 출두 여부로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래형씨는 이날 오전 변호사 사무실에서 동생을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어 6시간여만인 오후 3시50분께 장 전 국장은 여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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