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평균 키보다 적아 보이는 중년의 독일인이 마중을 나왔다. 독일 정부에서 배정한 전속 안내인이다. '문학박사 홀머 브로홀로스'라고 한글로 적은 명함을 내민다. 같은 글씨 크기로 '부홍만'이라는 한국식 이름도 병기했다.옛 동독땅서 낳고 자라서 공부하고 학위까지 한 '한국학자'다. 올해 45세. 전형적인 '동독인'이라고 할 그는 그후 2주동안의 동행에서 통일독일의 시민으로서의 내면 풍경을 가끔씩 내비쳤다.
동 베를린에 소재한 훔볼트 대학에서의 학위논문이 '한국어 동사 격지배에 대한 연구'였고 그는 80년대 후반 평애에 체제하면서 '평양전설' '조선문화사개요'등의 독일어역서를 출간한 일이 있다. 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동독선수단의 통역으로 수행, 처음 서울구경을 했고 라오스 비엔타인대학에서 초빙교수로 독일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독일 통일이 되자 서독의 수도인 본에가서 동양의학과의 한국어강사가 되었고 95년에는 서울대에 와서 한국문학을 공부했다. 박완서.서영은.오정희,오탁번.홍성원 등의 단편소설들을 번역. 한.독 대역으로 출간한 것이 97년의 일이다.
평양에서도 살았고 서울에서도 살아 온 그는 구 동독에서도 살았고 통일독일에서도 서쪽과 동쪽을 다 살아보는 '체제떠돌이'라 할만 하다. 두 체제의 약점과 강점을 그 만큼 잘 아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외적 통일은 간단하게도 이뤄질 수 있으나 내적 통일은 결코 간단하게 이뤄질 수 없으며, 마음 속에 쌓인 '장벽'을 허무는 일은 경제 발전이나 생활수준 향상보다 몇배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사실들을 스스로 체감하는 중이다.
그는 옛 동독도시들의 길거리나 주차장에서 '트라반트' 차종이 발견되면 "저것이 동독이 자랑하던 차"라고 반색하듯이 일러주곤 했다. 반가움 반, 쓸쓸함 반이다. 사라져간 체제와 함께 밀려난, 한 때 젊은 동독인들의 꿈이었을 트라반트 승용차의 가차없는 퇴장에 대한 연민이 짙게 배어있다.
경쟁력 없고 쓸모가 다하면 퇴츨되는 것이 시장경제 논리이듯이 트라반트는 어쩌면 상실되어버린 동독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의 하나인 것이다. 옛 동독인들에게 시장논리를 체화하는 일은 아직도 설고 힘겹다.
브란트의 동방정책 입안자였던 에곤 바르는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우리 정부에 조언하면서 "통일을 이룬 뒤 가장 어려운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국민 사이의 인간적 심리적 통일"이라고 말했다 한다. 갑자기 점령군처럼 몰려온 여러 '변화'들, 뒤바뀐 산업.기업 구조, 무너져내린 사회,문화 기반 등에 직면한 심리적 충격과 장애는 "아마도 한 세대 전부가 걸릴지도 모르는 시간이 요구되는"일이다. 어렵기로는 요즘 한국적 정치용어인 '국민대화합'과 너무나 비슷하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을 지금 붙잡고 있는 최대 난제는 남북도 통일도 아닌 '남남'이요 '국민 대화합'이다.
직접 찾아나선 영남 땅에서 그는 "(국민화합을 위해) 정말 노력했으나 여러분의 마음을 바꾸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 지역 인사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경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위기는 아니다.(국민화합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고 전한다.
노벨상 수상 소식에 대한 첫 소감에서 부터 일관된 '화합'론이다. 사실 국외여건이나 국내사정이나를 막론하고 요즘 우리 주변은 "노벨상 빼고는 뭣 하나 되는 게 없다"는 자조에 빠져 있다.
김 대통령이 지금 기댈 곳은 단 하나 -국민밖에는 없다. 언제나 처럼 국민을 '빽'삼아야 한다. 초당적 자리에 서는 대결단이 그 방법이다.
칼럼니스트 assisib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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