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30년 전의 일이지만, 어느 정부부서에서 한국을 해외에 홍보하는 영문책자의 편집을 도운 일이 있다. 그때 문학에 관한 부분은 당시 평론계의 최고권위자에게 집필을 의뢰했는데, 그가 제출한 원고를 보니 같은 부서에서 나온 다른 영문책자의 한국문학 장(章)을 그대로 타자를 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담당사무관에게 알렸더니 몹시 분개했다.그러나 그 어이없는 표절원고는 그대로 새 책자에 실렸다. 그 해 안으로 책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다시 원고를 의뢰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표절원고를 제출한 비평의 대가에게는 당시 최고예우의 원고료가 지급됐다.
그 때는 해외배포용 한국소개책자도 사실은 국내용이었다. 담당부서에서는 광택지에 컬러 사진이 많이 들어간 호화장정의 영문책자를 장관에게 보여 신임을 얻고, 장관은 대통령의 사진이 첫 페이지에 실린 그 묵직한 책을 대통령에게 보여서 점수를 따는 것이 그런 책자제작의 주목표요, 용도였다.
요즈음 국정감사에서 월드컵조직위원회와 한민족네트워크의 영문 홈페이지에 실린 어이없는 한국소개문에 관한 기사를 보니까 '아니 아직도 이런 일이!'하고 정말 낙담스러웠다.
내가 유학을 하던 70년대에는 한국제품이 미국시장에 서서히 침투하던 때인데, 제품사용설명서의 영어가 너무 치졸해서 혼자 창피해한 일이 여러 번 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관광유적지의 안내판 같은 것이 너무 형편없이 우스꽝스런 영어로 되어있어서 안타깝던 일이 많았다. 조금은 나아졌는가 했는데 5월 철원에 갔다가 고석정에 관한 아래의 안내판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사진을 찍어 왔다.
Ko Sk Ch'ng is one of the Ch'orwon eight beauty sceneries and one of historic interesting Places. It sits in the middle of the Han Tan River running between both curious rocky cliffs. In this grand sight area, there is a historic pavillion which King Jin P'yong and King Chung Suk played and there are 10 meter high rocky walls and a natural cave as small as Petrine's room. And also, in this place, a chivalrous robber of Chosun King Myong Jong, Lim Kk Ch'ong who had complaints against the government, robbed them to the government and distributed tributes to the folks. This fabulous place, which once in a while, was a chivalrous robber's den and was designated a national tourist resort in 1977.
번역이 불가능한 부조리문이지만(로마자표기법칙까지 감안해서) 억지로 번역을 해본다면 대강 이렇다:
고석청은 철원팔미경의 하나이며 역사적 흥미로운 장소의 하나이다. 그것은 둘 다 이상한 바위절벽사이를 흐르고 있는 한탄강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이 거창한 시각지역에는 진평왕과 중숙왕이 (갖고)놀았던 역사적 정자가 있고 10㎙ 높이의 바위벽과 페트린느의 방만큼 작은 자연동굴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정부에 대해 불평이 있었던 조선왕 명종의 기사도적 강도 림걱청이 그(것?)들을 정부에 훔쳤고 서민들에게 조공(朝貢)을 분배했다. 가끔은 기사도적 강도의 소굴이었고 1977년 관광지로 지정된 이 환상적인 장소.
대다수 한국인이 6년 이상 배우는 영어가 이런데 다른 외국어는 어떨지 생각하기도 두렵다. 외국에 여행하다가 우스꽝스러운 안내판을 보고 실소를 터뜨리는 것도 관광의 재미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엉터리 안내판을 관광자원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이런 것은 지난 세기에 완전히 해결을 했어야 하는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에 한국안내영문을 검증하는 기관을 두어 한국소개 책자나 홈페이지의 영문을 일일이 번역은 못해준다 하더라도 등급 판정이라도 해주어서 나라를 선양하는 대신 웃음거리로 만드는 소개문은 유포되지 않도록 하고, 가능하면 번역자문도 해주도록 해야한다.
서지문ㆍ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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