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벤처기업인의 불법대출사건이 경제위기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래서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의견들이 다양하게 개진되고 있다.이 논의의 중심에는 도덕성의 해이가 자리잡고 있다. 문어발 식의 기업확장에만 골몰하는 벤처기업인, 투기성의 자본소득에 혈안이 되어 있는 국민, 그리고 정경유착의 고리 속에서 정부의 기능을 왜곡시키는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그 일그러진 군상들로 떠오른다.
이 가운데 정치인과 관료들은 정경유착의 부도덕성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를 주저하며, 그 해결을 위한 노력에도 미온적이다. 또한 수사기관도 정경유착을 파헤치는 일에는 언제나 늦장을 피운다.
물론 위기는 모든 원인들이 얽히고 설켜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불법대출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역시 힘과 권한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 바로 정치인, 관료, 공무원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정치인에게는 시민들이 지지의 표를 거두어들이고, 관료와 공무원들에게는 그들의 타락한 도덕성을 비난함은 물론, 부정부패행위를 법에 의해 강력하게 처단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더욱이 시장과 각종 사회체계의 공정기능을 감독하는 관료나 공무원에게는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더 무거운 법적 책임이 부과되어야만 한다. 또한 이 법적 책임 속에 부정부패행위로 획득한 일체의 이익을 환수시키는 조치가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에서는 도덕적 관점이 지배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듯 공무원 개인의 도덕성 함양운동으로는 공무원사회의 부정부패를 결코 없앨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근본적으로는 흔히 정경유착으로 대변되는 정치체계와 경제체계의 왜곡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성의 해이와 부정부패가 일어난 제도적 구조의 비틀림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세 가지 점이 특히 주목되어야 한다.
첫째, 정권교체와 같은 정치적 역학관계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고, 전문성과 자율성 그리고 공익성의 이념으로 무장된 행동방식이 공무원사회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업공무원제도의 역사적 확립이 긴요할 것이다. 둘째, 공무원사회내에 부정부패를 서로 통제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업무처리를 서로 유인하는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무원사회내의 의사결정구조가 권위적인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협의와 조정의 대화적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구조변화는 공무처리의 투명성을 전제로 한다.
또한 의사결정의 과정에 대한 시민의 모니터링과 같이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공무원의 재량권을 최대한 축소하는 개혁이 요구된다.
셋째, 좀 더 거시적 과제이긴 하지만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각종 사회체계의 자율성이 높아져야 한다.
이번 불법대출사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금융시장체계의 형성과 관리를 산업자본세력에 내맡겨도 안되지만 정부의 타율적인 통제와 조종에 내맡겨서도 안된다.
권력적인 시장개입은 정부의 기능능력을 넘어선 일이기도 하지만, 검은 거래의 온상이 됨으로써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만개할 수 있는 최적의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그 형성과 운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각종 자율적인 사회체계만이 그런 토양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기반이 될 수 있다.
그 기반 위에서 정부는 비록 작아지지만, 사회적 세력들간의 이해조정과 갈등해결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틀의 관리자로서 효율적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바로 그런 정부 속에서 부정부패는 지금보다 현저하게 축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돈ㆍ고려대 법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