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아선 아예 공장 문을 닫고 싶은 심정입니다."27일 오후 경기 안산 반월공단내 컴퓨터부품 조립업체 Y전자의 생산라인에는 근로자들의 바쁜 손놀림과 기계소리는 간데 없고 스산한 분위기만 감돌았다.
썰렁한 2층 작업실에 10명 남짓한 직원들만 1개 라인에 붙어 있을 뿐 나머지 라인에는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멈춰있는 2개 라인 옆 테스트 공정라인에는 컨베이어벨트만이 돌아가고 하드웨어나 CPU등 다른 업체에서 조달받아야 할 부품들이 빠져 출하하지 못한 중간완성품 재고들만 운반차에 가득 쌓여 있다.
수주무량이 35만대에서 15만대로 뚝 떨어져 350명의 종업원 중 30명은 이미 무급휴가 중이지만 여전히 100여명의 인력이 남아돈다. 작년 405억원의 매출액을 올려, 재투자했던 설비들도 자충수가 될 전망이다.
인근 N사는 같은 날 채권은행직원에게 이 달에 갚아야할 1억원의 이자를 줄 수 없어 상환계획 재조정을 부탁했다. 매년 40억~50억원의 매출을 보장해줬던 건설사들의 부도여파로 아파트에 거실장, 신발장, 방문, 창틀 등을 맞춤제작하는 특판시장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99년까지는 받아놓은 수주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신규 아파트건설이 마비되면서 물량이 아예 없다. 외환위기 이전에 320명이었던 전체 종업원은 현재 150명으로 최소인력만 남겨놓은 상태다.
연말을 앞두고 막바지 수출물량 조달과 내수시장 출하에 바빠야 할 전국의 지방 공단이 깊은 시름에 빠져있다. 최근 들어 내수시장 침체에다 자금시장 경색까지 겹치면서 공단마다 생산을 줄이거나 아예 문을 닫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반영하듯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9월 중 기업들의 생산 판매등 경기동향과 자금사정을 조사한 결과 경기실사지수(BSI)가 89로 두달 연속 100이하로 떨어졌다. 특히 생산지수는 94로 올들어 처음 100이하로 떨어졌으며 재고는 늘고 내수는 계속 줄고 있다.
"하반기 들어 중견기업 자금난 이야기가 떠돌면서부터 결제어음 만기가 연장되고 주문이 급감했습니다."중소기업인들은 한결같이 금융시장 경색으로 어음할인이 되지 않아 원자재구입에 따른 결제도 힘들어졌고 8월부터는 유가상승으로 원가부담이 늘면서 섬유나 기계 업종은 수출도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건설사 연쇄부도와 대우차 매각지연 등으로 목재ㆍ가구와 기계ㆍ금속 등 관련 제조업은 가동을 멈추는 기업이 속출했다.
대우차 부품제조업체가 전체 업체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인천 남동공단은 9월 중순 포드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연료탱크를 100% 대우자동차에 납품하는 S공업은 포드가 인수를 포기한 9월부터 라인이 거의 정지됐다.
10월 가동률은 20%. 회사측은 "2교대근무를 1교대로 바꿨는데 최소 2~3월까지는 이 상태로 가야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인근 기아차와 대우차에 납품하는 D금속의 강홍규(43) 사장은 "예전에는 신용으로 어음할인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은행에서 추가담보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섬유ㆍ화학산업도 유가상승의 직격탄을 맞아 생산비용은 급등하고, 소비경기위축으로, 내수ㆍ수출이 모두 꽉 막힌 상태다. 염색업체인 반월공단 S사의 안순보 사장은 "동대문 시장에 생산품의 절반정도를 내다파는데, 경기가 나빠 주말가동을 아예 멈췄다"며 "12년 동안 이 일에 종사해 왔지만, 외환위기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때인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산=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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