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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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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입력
2000.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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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추상논의 / 임석재 지음, 북하우스 발행한 권의 책을 읽은 뒤 사물이 달리 보일 때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임석재 교수가 지은 `한국적 추상논의'는 이런 의미에서 독자들에게 은밀한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도심 한 가운데 그냥 서있을 뿐이었던 건축물의 의미와, 그 속에 담긴 건축가의 의도가 확실히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르게 다가선다.

책은 1990년대 지어진 27개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건축가가 무엇을 고민했고 말하려 했는지 들춰낸다. 그러면서 당시 한국 건축가들의 최대 고민이었던 `탈(脫) 산업자본주의'의 과제가 어떻게 개별 작품마다 변용되고 수용됐는지를 섬세한 언어로 풀어헤친다.

저자는 우선 1990년에 건축가 김원씨가 설계한 갤러리 빙을 꼼꼼히 뜯어본다. 서울 하얏트호텔 맞은 편에 있는 이 건물은 건축 문외한이 보더라도 겉면이 온통 유리와 알루미늄판으로 치장된, 상당히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건물이다. 안에는 철제 빔이 이리저리 얽혀있어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저자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이 건물의 외양부터가1970, 80년대 한국 건축물의 큰 특징인 동일성과 총체성의 가치(서울역 앞 대우빌딩을 생각해보라)를 무너트렸다고 평가한다. 똑 같은 크기의 방과 창이 무책임하게 반복되는 동일성의 가치와, 무표정한 단순 육면체의 총체성의 가치를 한순간에 폐기처분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폐쇄성과 답답한 내부공간은 건축가의 엘리트주의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한다.

추상건축물의 태생적 모순에 대해서도 깊은 시각을 보인다. 이는 차갑고 깨끗한 이미지의 추상건축물에, 똥 다음으로 가장 최하의 상태인 쓰레기가 쌓이면 이는 건축가의 책임인가, 입주자의 책임인가 하는 문제다. 티끌만큼의 쓰레기도 허용하지 않는 건축물은, 건축물을 마치 미술작품의 독립적인 오브제로 여긴 오류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는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폐쇄성의 역설, 추상맥락주의, 현실추상과 예술추상…. 하지만 적당하게 삽입된 해당 건축물의 사진과 저자의 친절한 설명에 귀 기울이다 보면 쉽게 이미지가 그려진다. 예를 들어 폐쇄성의 역설에 관한 부분. 1998년에 지어진 공간 신사옥(건축가 장세양)은 산업자본주의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벽면을 모두 유리로 덮었지만 오히려 뜨거운 햇볕 때문에 하루종일 차양막을 내려야 하는 `폐쇄성의 역설'에 빠져들었다는 지적이다. 무릎을 칠 만큼 날카로운 시각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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