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은 내부 비판과 외부 홍보의 기능을 수행한다. 취재보도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편집국 내부에서 자아 비판을 시도하며, 기사가 얼마나 잘, 혹은 잘못 보도됐는지를 독자에게 알린다. 이같이 좋은 제도도 잘못 운영하면 의도와 달리 오히려 신문과 독자의 간격을 더 벌릴 위험도 있다. 홍보 기사만으로 독자의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으며 경영진이 공개적인 내부비판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평소보다 꼼꼼히 지난 일주일의 한국일보를 읽으면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비판을 가해야 할지 옴부즈맨 칼럼을 괜히 맡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펄펄 끓는 기자정신으로 납을 녹여냈던 한국일보의 전통을 기사에서 찾기가 어려웠다. 경쟁사는 치고 나가는데 과연 어떤 생각으로 신문을 만들고 있을까. 기자들이 안이함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억측까지 들었다.
18일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폭력 종식'에 합의했다는 머리기사는 결과론적이지만 오보로 나타났다. 이 기사는 5W 1H(육하원칙)의 전형으로 스트레이트 형식으론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클린턴 대통령의 발표에 전적으로 의존했기에 중동의 현실을 제대로 전했다고는 할 수 없다. 관련기사 밝혔지만 분쟁당사자가 공식서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폭력종식에 합의했다고 보도할 수 없다.
24일자 `클린턴 내달 방북 합의'와 25일의 `북, 미사일 발사 중단'이란 1면 기사도 역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북한방문 상황을 정확하게 독자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올브라이트의 방문은 클린턴 방북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것으로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할 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클린턴의 방북을 기정사실화했다. 또한 미사일 카드 섹션때 `처음이자 마지막 발사'란 대목도 김정일이 올브라이트에 유머를 섞어 농담을 했을 뿐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 미사일 발사 중단'이란 딱딱한 제목도 상황을 오도할 수 있다.
더구나 뉴욕타임스는 북한의 환대에 대해 올브라이트가 “평생의 공부를 통해 공산주의의 선전술을 잘 알고 있다”며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이 단지 장미빛으로 칠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11월 11일에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하리라고 일본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과연 어느 보도가 신속하며 정확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21일 아셈 관련 1면 기사도 우리 언론이 개선해야 할 스트레이트 보도형태의 전형이었다. 서울선언의 만장일치 채택이나 북한과의 관계개선, 국가 계층간 정보화 격차를 논의했다는 단순 사실의 나열 기사가 과연 일반 독자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26명의 국가정상이 일렬로 선 폐막사진도 다른 일간지와 전혀 차별화하지 못했다. 이런 행사기사는 더이상 TV나 인터넷뉴스와 겨룰 수 없다. 일간지는 이제 적극적으로 기획, 탐사 혹은 심층취재, 연구 통해 행사 이면에 숨어있는 의미발굴에 나서야 할 때다. 이런 관점에서 핀란드의 이동통신사인 노키아의 구조조정을 다룬 23일자 메아리와 25일자 `국정감사의 자체감사'란 김창열칼럼이 우리사회가 겪고있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했다고 평가된다. `웃기는' 나라의 교훈과 국회정상화를 위한 자체감사 논리가 한국일보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또 한국일보를 읽으면서 다양한 기사쓰기 스타일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정선 폐광촌에 카지노 붐이 몰아친다는 기사(25일자 27면)는 내용과 제목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로 오세요'가 어울리지 않았고, 수도권 메트로면에 실린 것도 어색했다.
심재철ㆍ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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