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육체가 아닌 정신의 사랑을 하고 싶어요” “아니야, 진정한 사랑은 육체적 사랑도 의미하는 거지, 안 그래?” “전 그래도 순결한 사랑이 좋아요”앞의 말은 여자의 것이고, 뒤의 말은 남자의 말일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 은 어떻게든 벗겨보려 애쓰는 남자와 가장 비싼 값에 벗으려는 여자의 밀고 당기는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 꼭 그래야 해요?”
여자는 이 말로 갈급한 남자의 마음에 기름 한 방울을 떨군다. 프랑스 카트린 브레야 감독의 `로망스' 는 영화 속 남자와 여자의 입장이 바뀌었다. `로맨스'가 아닌 오히려 섹스에 관한 영화로 그 주체는 여성이다. 여교사 마리(카롤린 뒤세)는 잘 생긴 모델 폴(사가모르 스테브냉)과 동거하는 사이, 그러나 남자는 계속 섹스를 거부한다. 여자는 생각한다. 남자가 여자의 몸을 탐하는 것은 결국 사랑의 다른, 혹은 유일한 표현 방식이라고.
여자는 한없이 방황을 하게 된다. 실제 포르노 배우 출신의 남자 배우의 육감적인 몸을 갖기도 하고, 수많은 여자를 상대해서 갖가지 변태적인 성경험을 가진 학교 교장을 만나기도 하며, 심지어 거리의 계단에게 깡패들에게 강간을 당하기도 한다.
섹스 장면이 많기는 하지만 마리의 끊임없는 여성의 독백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것은 내면적으로는, 섹스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수절녀처럼 살다 어느날 육감적인 성의 세계에 눈을 뜬다는 일련의 `XX부인' 시리즈의 여주인공들과는 다르다.
에로물의 주인공이 겪는 과정은 성적인 자아의 발견이 결국 특정한 남자의 육체에 대한 `종속' 을 유도한다. 그러나 마리는 많은 남성들의 보편적 기대를 배반한다. 엄청난 남성을 가진 남자에게도, 대단한 판타지를 데공하는 남자에게도 여자는 결코 종속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뱃속에 든 아이의 아버지인 폴을 죽음으로 유도함으로써 여자는 욕망의 `자족' 을 완성한다. 그 결말은 `잉태와 출산'이다. `생명'은 그녀에게 새로운 생명 자체일 뿐, 이를테면 `두사람 사랑의 결실' 이라는 감상은 없다. 모태로서의 여성의 궁극적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생태주의적 페미니즘을 구현하는 듯한 마리의 성집착증과 행태는 그래서 반란이고 도발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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