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한국디지탈라인(KDL) 사장 정현준(鄭炫埈ㆍ32)씨의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던 사실이 25일 밝혀짐에 따라 정씨가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에 구명을 위한 `전방위 수사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이에 따라 정씨가 왜 수사기관에 제보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수사가 이뤄졌는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정씨의 전방위 수사청탁
서울경찰청 정보과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정씨가 지인(知人)을 통해 정보과 직원에게 면담을 요청, 이달 4일 이후 정보분실과 호텔 등지에서 4차례 만나 자료를 건네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평소 정보과 직원과 안면이 있는 대학선배를 통해 “서울 동방금고 이경자(李京子) 부회장의 비리와 관련, 상담할 일이 있다”며 만날 것을 요청해 왔고 4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처음 경찰과 접촉했다.
정씨는 7일과 9, 11일에도 서울 중구 북창동 동사무소 3층에 위치한 서울청 정보1분실로 3차례 더 찾아와 “이씨가 400억원대 대출금을 나 몰래 빼돌려 사기를 당했다”며 결백을 주장한 뒤 대출금 거래내역과 입금확인증 등 자료를 넘겼다.
한편 서울청 수사과도 “이달 중순 자체 첩보를 통해 정현준 사건에 대해 수사해 왔다”고 밝혔다. 수사과측은 “정보과에서 정씨와 관련, 어떤 첩보도 넘겨받은 적이 없다”고 밝혀 정씨가 수사과에도 같은 제보를 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씨는 사직동팀과도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9일께 사직동팀에 장문의 진정서를 보내 “행방이 묘연한 400억원 중 일부는 이씨가 운영하는 팩토링금융회사로 유입됐고 회사 개업식때 여권실세 등 정치인들의 화환도 눈에 띄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것.
정씨는 지난 16일 사직동팀의 출두요구까지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정황 등으로 보아 사직동팀이 정씨 제보를 근거로 평소 소문으로 나돌던 코스닥비리 실체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려다 16일 팀 해체로 조사를 중단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민정수석실측은 이날 “사직동팀이 정씨를 조사한 적은 없으며, 공식기관에서 수사한 것으로 안다”고 일체의 내ㆍ조사사실을 공식 부인했다.
정씨는 또 주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20일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지검 검사까지 찾아가 “이경자를 잡아달라”며 조사를 요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왜 제보했고 어디까지 수사했나
정씨는 KDL의 부도를 막기 위해 이 부회장에게 수차례 자금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한 뒤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주식담보대출과 차명계좌를 이용해 400억여원을 빼돌렸다고 생각한 정씨는 속절없이 부도가 날 경우 자신만 책임을 뒤집어 쓰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역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씨는 정ㆍ관계 로비의혹으로 이씨를 끌고 들어가 책임을 피하고 사건에 연루된 정ㆍ관계 인사들과 `빅딜'까지도 계산, `전방위 구명 수사의뢰'를 했으리라는 해석이다.
경찰은 정현준씨와 그 주변인물에 대한 첩보수집은 물론 여권실세와 금융감독원 간부 등 고위층의 연루 여부까지 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직동팀은 정씨의 불법대출과 관련된 고위층의 비리여부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수집하고도 팀 해체로 미처 조사에 착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이 여권실세의 이름과 금감원 간부의 이름을 거명했는지 여부를 사직동팀이 소상히 물어봤다”고 주장했다.
서울경찰청도 정씨에 대한 면담조사 및 주변조사로 상당한 첩보를 수집한 상태였으나 전교조 `알몸수색' 파문 등으로 인해 수사를 자체 유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사결과 여권실세가 거명되는 등 대형권력형 비리사건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부담을 느낀 경찰이 자체 내사종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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