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독자전화가 유난히 많았다. 우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잇단 돌출발언과 관련하여 `이런 것 좀 그만 쓰라'는 전화가 많았고 그 다음으로 쏟아진 전화는 20일에 집중됐는데 이날 1면에 실린 사진 때문이었다.이날 한국일보는 아셈총회 기간 중 서울시민이 지키기로 한 짝홀제를 어기고 자가용을 타고 온 국회의원과, 이를 준수해서 택시를 타고 온 국회의원의 모습을 나란히 보도했다. 초판(조간신문은 밤 사이 일어난 일을 계속 갈아끼우면서 하루 밤 사이에 보통 5개판 정도를 만든다.
초판은 전날 저녁 6시30분에 가장 먼저 발행되는 신문이다)에는 당사자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게 실렸던 이 사진은 그 다음 판부터는 얼굴부분이 모자이크 처리됐다. 전화를 건 독자들은 당연히 이들이 누구냐고 묻고 “사진을 실으려면 누군지 알아보게 내야 한다”는 주문을 덧붙였다.
신문사에서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한 이유는 이렇다. 우선 사진이 찍힌 기간은 계도기간으로 짝홀제 준수가 의무적인 것은 아니었고, 이 사안 하나로 1면에 사진이 보도되어 국회의원이 얻을 피해는 그 의원이 저지른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서울경찰청도 국회 회기중이라는 점을 들어 국회의원에게 짝홀제 준수의 예외를? 인정했다는 점도 감안됐다. 요컨대 공적으로 죄로 규정되지 않은 것을 보도하여 사건화하는 것은 센세이셔널리즘이 아닐까 하는 점을 우려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원유헌기자는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 하는데 반대했다. 원유헌기자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 19일 교육위원회와 행자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리는 정부 세종로청사 앞에서 오전 8시30분부터 30분동안 기다렸다.
그 동안 차에서 내리는 의원은 20명 정도였는데 이 가운데 택시를 타고 온 박병석 의원과 봉고차를 타고 온 김경재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승용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특히 무신경하게 홀수번호인 승용차를 버젓이 몰고 온 사람 중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중진의원이 고루 들어있었지만 박병석 의원이 민주당 의원이라는 점을 감안, 민주당 소속인 모 의원의 사진이 1면감으로 채택됐다.
그런 점에서 원유헌기자는 모 의원의 신원공개에 대해 “짝홀제를 어긴 의원이 많은 가운데 유일하게 공개되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어긴 것은 사실인만큼 공인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들의 전화는 원유헌기자의 이런 반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특히 서민들의 생계형 자가용 운전마저 금지된 상황(한국일보 21일자 6면 독자의 소리)에서 다른 차를 타도 큰 문제가 없는 국회의원들이 사회와의 약속을 무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예외를 인정한 경찰청의 처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일보가 모든 국회의원들의 짝홀제 준수여부를 일일이 취재하지 못한 탓에 형평성의 차원에서 당사자들의 얼굴을 가릴 수 밖에 없었던 점은 독자들에게 사과드린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사소해 보이는 이 일에 국회의원들의 왜곡된 특권의식이 숨어있으며 시민으로서 의무보다 국회의원으로서 특권을 더 중시하는 태도는 다른 중대한 문제도 잘못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독자들의 관점에 동감한다. 그런 점에서 뒤늦게나마 짝홀제를 준수한 의원의 이름이나마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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