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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마흔에 전시기획차 첫 미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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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마흔에 전시기획차 첫 미국행

입력
2000.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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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마흔 살의 나는 미국 전국을 순회하는 `한국미술 5천년전'의 전시 큐레이터로 파견되었다. 미국은 초행길이었으며 클리브랜드와 보스톤 두 도시에 6개월간 머물 예정이었다.떠나기 전에 내가 미국에서 한국 미술에 관한 강연을 하게 될 지 모른다는 엉뚱한 예감이 들어 우선 슬라이드 몇 장을 챙겼다. 도착하자마자 알카잘 호텔에서 머물며 내 스스로 주제를 `신라미술의 과도기양식'이라 정하고 저녁식사 후 매일 영문으로 써 나갔다.

20여 년 전 고등학교 때 과목에도 없었지만 영작문이 재미있어서 혼자 열심히 공부한 덕택에 서투르나마 영어로 쓸 수 있었다. 어느 나라 미술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하나의 미술 양식이 어떻게 확립되어 가는가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클리브랜드미술관에서 전시가 끝나고 보스톤으로 유물을 옮기게 되어 진열실에서 포장을 하고 있었는데 보스톤 미술관장 얀폰테인 박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석달 후에 열릴 국제심포지움에 참가하지 않겠느냐고. 이미 줄거리를 다 잡아놓은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유명한 대가들 사이에서 나는 무명이었고 가장 젊었다.

내가 발표한 내용은 한국의 불상을 중국의 그것과 비교한 것이었다. 영어로 발표를 마치자 갑자기 내게 사람들이 몰려들며 악수를 청했다. 모두들 `아름다운 영어'라고 찬탄했다. 내용도 신선했거니와 나의 영어 발음도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날 리셉션에서 그 발표를 들은 하버드대학의 세계적 미술사학자 로젠필드교수는 일년간의 교환교수를 제의했다. 일주일 후 그는 다시 박사과정을 다시 제의했다. 나는 교환교수보다 학생이 좋다고 했다. 그는 나의 발표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는 듯 했고 그 이후 줄곧 내 후원자가 돼 주었다.

미국에서의 3년간 기초 연구는 이후 활발한 연구의 초석이 됐다. 그때 발표한 주제는 지금까지 여러 번 고쳐서 두툼한 원고뭉치로 내 서랍에 4?들어있다.

나는 인과율(因果律)을 믿기에 언제나 내 독자적 방법으로 최선을 다 한 다음 하늘의 응답을 기다린다. 그러면 언젠가 반드시 응답이 오곤 했다. 삶의 원리를 터득하고 확인한 그날은 세계가 훨씬 아름답게 보였다.

강우방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ㆍ전 국립경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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