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방을 넘어설 차세대 대표 주자는? 최명훈ㆍ윤성현ㆍ윤현석ㆍ양건(1995~97년)이나 이성재ㆍ안조영ㆍ김명완ㆍ목진석(98~99년) 등 역대 `신(新) 4인방' 의 주역들은 이제 `차세대'라는 꼬리표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연륜'이 쌓였다. 반란의 조짐은 있었지만 기대했던 쿠데타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바둑계는 이제 `신 4인방'을 뛰어넘는 실력과 재능에다 패기와 참신성까지 겸비한 새 얼굴을 찾고 있다.올들어 32연승에다 다승ㆍ승률 부문 1위를 달려온 `불패소년' 이세돌(17) 3단이라면 누구도 차세대 대표주자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프로 데뷔 첫 해에 본격 기전(올해 제8기 배달왕기전) 도전기에 오른 박영훈(15) 2단,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연파하며 제12기 기성전과 제5회 삼성화재배,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본선에 연속 진출한 원성진(15) 2단 역시 주목을 받고 있는 차세대다. 이들 3파전 양상으로 흐르던 신예 기상도에 뜻밖의 복병이 가세했다.
최철한(15) 3단이다. 국내 타이틀전에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던 그는 연승전(連勝戰) 방식의 국가별 단체대항전인 `제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통해 일약 `월드스타'로 발돋움했다. 중국의 `6소룡'류징(劉菁) 7단과 위핑(余平)8? 6단을 연파했고, 배짱도 좋게 일본 랭킹 3위 혼인보(本因坊) 보유자 왕밍완(王銘琬) 9단마저 꺾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기세이(棋聖)를 지낸 일본 중견강호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 9단에게 발목을 잡혀 4연승 달성에 실패하긴 했지만 우리 팀의 막내이자 최연소 출전자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이창호도 국내 타이틀을 휩쓸며 승승장구하던 1990년대 초 국제무대에선 한동안 연전연패의 늪에서 허덕이며 `우물 안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며 “어린 나이에 그것도 처녀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해외 강자들을 3명씩이나 연파했다는 것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기록”이라고 말했다.
97년 바둑도장 스승인 박성수(39) 초단과 함께 일반인 입단대회를 통해 입단, 화제를 낳았던 최 3단은 공수의 완급조절이 뛰어난 `조화형' 바둑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정확한 수읽기와 수비를 주무기로 한 이창호 풍의 실리바둑이지만 조훈현 류의 발빠른 공격력에다 배짱과 담력까지 겸비했다는 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다. 이번 농심배 제2국 일본 선봉 왕밍완 9단과의 대국은 최 3단의 빈틈없는 수읽기 솜씨와 공격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 판이었다. ★기보 참조
중반 이후의 판세는 백(최 3단)이 좌변 일대에 짭짤한 실리를 확보했지만 중앙 흑 세력을 너무 키워줘 집 싸움에서 상대가 안 되는 형국. 이날 승부의 분수령이 된 백 114부터 중앙 흑진을 파괴하는 공략이 시작된다. 흑이 115로 포위하자 물러서지 않고 이번에는 오히려 116으로 한 발 더 전진, 배짱 좋게 흑진을 모조리 유린하겠다는 기세다. 흑 117을 놓으니 이젠 침투한 백 돌의 연결을 서둘러야 하는 다8?급한 상황. 하지만 백은 침착하게 흑의 주문대로 한 수 한 수 응하는 듯 하더니 백 138로 흑 103을 단수친 뒤 140부터 146까지 절묘한 수순으로 백 돌을 모두 연결시켰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수순으로 흑 세력을 일순간에 쑥밭으로 만든 것. 검토실 기사들을 일제히 무릎을 치며 15세 소년의 노련한 반면 운영에 찬사를 연발했다.
최3단은 입단 3년차인 지난해 29승 17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누구한테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올해엔 농심배 국내 예선전 6연승과 본선 3연승을 포함해 벌써 43승 10패. 다승 및 승률 부문에서 3, 4위를 다투는 기록이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이 `앙팡 테리블(무서운 소년)' 의 상승세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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