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북한에서 인기있는 남쪽 대중가요는 30~40년대의 옛노래나 나훈아류의 뽕짝류다. 홍도야 우지말, 눈물젖은 두만강, 신라의 달밤, 낙화유수, 타향살이 등이 선호된다. `홍도야 우지마라' 등은 심혈을 기울인 영화 `민족과 운명'에 삽입되었을 정도.근년곡으로는 사랑의 미로, 그때 그사람, 바람 바람 바람, 첫사랑, 당신을 모를실꺼야, 이별, 언제라도 갈테야, 애모 등이 잔잔하게 퍼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좋아하는 여가수는 이미자, 김연자, 은방울 자매, 김세레나. 남자는 조용필, 남진, 나훈아 등.
남쪽에서는 일찍이 `한물' 갔다는 여성국극 따위가 북한에서 공연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으로 예감된다. 북한이 자랑하는 보석화라는 미술장르를 보면, `이발소 그림' 생각이 든다.
물레방아 돌고 백조가 노니는 호숫가의 오두막집 한 채가 한껏 평화를 자아내는 화사한 분위기다. 포스터는 흡사 우리의 60년대식 한국영화 포스터의 원색적 느낌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북한문화에 대한 남쪽의 일반적 반응은 `촌티'다. 과연 북한 문화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촌티가 난다. 왜 그럴까. 우리의 미감이 `서구적 세련미'를 갖춘 탓일까. 일면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그 촌티가 후진 것이기만 할까. 결론부터 내리면, 북한 문화의 촌티는 통속성에서 비롯된다. 통속성을 모르고서는 북한문화를 옳게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쓰는, 비하하는 뜻의 통속성과 다르다. 통속성은 대중성을 말하며 그 통속성은 분명히 민족성에 기초해야한다고 북의 예술론은 주장한다. 북의 문화예술은 쉽게 다가온다. 복잡다단한 중간색보다는 강렬한 원색 분위기다. 도시의 차가운 미니멀리즘 따위는 없다.
덕분에 메트로폴리스의 지나치게 자극적인 문화에 포로가 되어있던 남쪽 사람들은 갑자기 출현한 촌티나는 북한문화의 돌출감에서 강렬한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촌티난다고 짐짓 깔보기도 하는 실정이다.
남쪽에서 촌티라고 부르는 이미지의 실체는 문화적 낙후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북한의 의도된 문화정책의 소산이다. 민족성과 통속성은 북한 문화예술에서 사상미학적 교양기능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요인이다.
TV를 통해 안방까지 북한문화가 속속 밀려들고 있다. 촌티로 내려보아서는 결코 북한문화를 옳게 이해할 수 없다. 촌티를 뛰어넘어 민족적 통속성의 가려진 부분을 옳게 볼 때 남북문화의 공유점이 마련되지 않을까
/주강현 통일문화학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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