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국내 신문에서 어이없는 글을 읽었다. 필자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제법 알려진 경제 전문가로, 현재 미 UCLA 대학원 교수다. 글의 서론은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전쟁ㆍ 테러 책임을 추궁하지 않은 채 일본에 북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잘못”이란 것이다.언뜻 북한의 사죄가 선행돼야 한다는, 상식선상의 보수 논리로 들린다. 그러나 결론은 `북한의 잘못은 묻지 않으면서, 왜 일본의 죄과는 따지느냐'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궤변이 버젓이 국내 언론에 등장한 것이 놀라울 정도다.
■그는 사실관계부터 제멋대로 왜곡, 전혀 학자답지 못하다. 그는 “최근 남북 화해물결에 `이게 바로 민족'이라고 말하는 한국 식자들도 있지만, 독일의 예를 보면 같은 민족이라고 무조건 화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동서독인 사이가 통일 뒤 오히려 소원(疎遠)해졌다고 주장한 것은 근거없다. 갈등은 분명 있지만, 국민 다수가 통일을 후회하고 무력대치를 그리워한다는 여론조사는 들어보지 못했다. 독일의 경험을 교묘히 비틀려다, 결국 독일인들을 모욕한 셈이다.
■그는 또 대만인들이 고향 대륙을 체험한 뒤 통일을 원치 않게 됐다면서, 남북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보았다. 풍요대신4? 억압을 선택하는 사람은 인류 역사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게 도무지 아구가 맞지 않은 논법이다.
독일이든 대만이든 남한이든 간에, 헐벗은 동족과 풍요를 나누기를 꺼리는 심리는 있다. 그러나 이기적 현상 유지욕을 넘어선 민족통일 대의(大義)를 거부하는 사회는 없다. 특히 대만과 우리를 비교하는 것은 틀렸다. 남북 교류에 `억압의 선택'이 왜 나오는가.
■궤변의 극치는 “일본에 50년간 사죄를 요구한 한국이 북한을 그냥 용서한다면, 이번엔 일본이 참기 힘들다”는 발언이다. 이를테면 혈육을 죽인 형제는 용서하면서, 어째서 조상을 죽인 이민족은 용서하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부모를 죽인 자가 그 혈육간 상쟁(相爭)을 탓하며 스스로 먼저 진 죄 값을 치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는 북한에 죄 값을 치러야 하는 이유를 김 대통령이 먼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역사와 정의를 왜곡하는 일본인의 글을 우리 사회 보수계층은 어떻게 읽었는지, 그게 궁금하다. 궤변을 논박하기 위해 굳이 이런 글을 쓴 게 아니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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