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ㆍ대신 신용금고 불법 대출 사건은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기대를 짊어지고 있는 벤처 세계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비리의 종합판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충격적이다.어느 분야에나 부정과 비리가 있게 마련이고 벤처업계에서 역시 그동안 불미스런 일들이 종종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그 규모와 양태가 죄질이 나쁜 범죄차원이어서 놀랍기 그지 없다.
이번 사건은 재벌의 구태를 비난해 온 벤처업계의 유망 청년 기업인이 재벌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해 일어났다. 반짝했던 벤처 붐으로 일확천금을 거머쥐게 되자 금융기관을 필두로 자금난에 허덕이는 유망 벤처기업 등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기업사냥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불과 1~2년 사이 2개의 신용금고를 포함해 언론사 등 20여 개 기업의 지분을 장악하는 문어발 벤처재벌이 됐다.
이 과정에서 계열 금융기관을 사(私)금고로 삼아 예금자들의 돈을 제멋대로 꺼내 쓰거나 소액투자자들의 주식을 허락없이 담보로 잡히는 등 온갖 불법과 변칙 수법을 동원했다고 하니 기성 악덕재벌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더욱이 불법 대출 사실을 안 금고 직원들 마저 입막음용 `보너스'에 매수돼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아 사기극의 한통속이 됐다니 4?기가 찰 노릇이다.
벤처 본연의 기술개발과 수익모델 창출에는 아랑곳않고 M&A(기업인수합병)라는 미국식 투전판을 섣불리 벌이다 종말을 고하게 된 이번 사례는 벤처업계의 자화상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벤처업계 일각의 예외적인 타락상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들리는 소식들이 너무 좋지 않다.
코스닥 주가 하락 등 벤처 열풍이 꺼지면서 많은 닷컴기업들이 본래의 사업보다는 딴생각을 하고 있는게 작금의 분위기라고 한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부실 닷컴기업들은 기업을 팔아 자본이득만 챙기려는 생각에, 자금사정이 풍부한 업체들은 인수할 사냥감을 고르는데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서 삐져나온 게 이번 사건이어서 그 파장을 더욱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탈선의 유혹을 느끼고 있는 것이 벤처기업인들이다. 이번 사건으로 우선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게 생겼다.
더불어 선량한 벤처기업인들도 사시(斜視)를 받게 됐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시장과 업계 전반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직시해 벤처업계가 우선 자정 활동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 정부당국도 감시 감독의 고삐를 조여야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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