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2호선 구로공단역 인근 우중충한 공장건물 사이로 우뚝 솟은 키콕스 벤처센터는 요즘 새식구를 맞느라 분주하다. 지난달 완공된 15층 높이의 이 건물에는 드림픽처21,원포넷,티엔씨정보통신 등 첨단 벤처업체들이 벌써 22개업체나 이주해 왔고 앞으로 21개가 더 들어올 예정이다.서울시 벤처집적 시설 1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낮에는 각종 통신 네트워크 공사로 분주하고, 사무실마다 밤늦게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있다. 구로공단을 관리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산단공)도 아예 본사를 이곳으로 옮겼다.
"테헤란 벨리를 굳이 찾아야할 이유가 없어요" 무선 인터넷 컨텐츠 서비스 업체인 와플의 윤영철(37)사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지난주 잠실 석촌호수에서 키콕스 벤처센터7층으로 옮긴 와플은 서울시로부터 연 7.5%의 저리로 임대 보증금을 지원받아 운영비 부담을 크게 덜었다.
같은 층, 여의도에서 온 인터넷솔루션업체 씨컴테크도 마찬가지.
최승석(39)사장은 "업계 전반적으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데, 이곳은 거의 공짜로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자랑했다.
굴뚝산업의 대명사였던 구로공단이 첨단 벤처산업 기지로 변모하고 있다. 1970~80년대 수출산업 기지역할을 하며 섬유·봉제산업 업종 중심이었던 공단이 지금은 고부가가치 첨단업종의 메카로 자리잡았다.8월 말 현재 입주업체 666개중 절반이 넘는 350개업체가 통신부품과 단말기, 인터넷 네트워크 장비 등 첨단업종으로 등록돼 있다.
구로공단에 변화의 바람이 시작된 것은 90년대 중반. 1996년 2호선 구로공단역 인근 1단지에 동일테크노타운이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에이스테크노 타워,1·2차 대륭테크노타워 등 미려한 외관의 아파트형 공장들이 20~30년 된 낡은 공장들을 밀어내고 잇따라 들어섰다.
이달 말 완공되는 2차 에이스와 올해초 착공한 대륭3차,코오롱, 마리오와 미라보 등 건물까지 포함하면 내년 상반기에는 벤처빌딩과 아파트형 공장은 9개로 늘어난다.
정보통신업체즐이 구로로 몰려들고 있는 이유는 평당 1,000만원에 달하는 강남의 사무실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 평당 300만원이면 아파트형 공장을 분양받을 수 있고 키콕스벤처센터의 경우 250만원대의 인근 사무실보다 저렴한 평당 190만원에 임대할수 있다. 임대료 80%를 출자전환받을 수도 있다. 때문에 43개 입주업체 신청 때 130개 업체가 몰려들었고 내년 상반기에 완공되는 아파트형 공장은 이미 분양이 완료됐다.
또 산업단지공단의 자체 투자자금 지원과 창투사들의 투자유치, 법무·회계·경영컨설팅 등 지원기관 확충 등도 벤처기업들의 '구로행'을 부추겼다.지원센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잇점과 제조라인을 병행할 수 있다는 환경요건 때문에 입주벤처들은 기술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다. 유니버셜정보통신의 조달주(27)대리는 "자금문제 뿐만이 아니라 초고속통신망 등 설비들이 아셈타워가 아니면 보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의 오완진(35)팀장은 "전국곳곳에 벤처센터가 생겨나고 있지만 정작 벤처문화를 제대로 만든 곳은 드물다"며 "구로공단이 벤처밸리로 제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정보교류의 24시간 근무 및 주거해결을 할 수 잇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진 산업단지공단이사장
산업단지공단 이효진(54) 이사장은 22일 “조립금속ㆍ섬유ㆍ인쇄 등 기존 구로공단의 중심 축인 6개 업종을 2006년까지 고도기술ㆍ벤처ㆍ패션디자인ㆍ지식산업 등 4개의 첨단업종으로 재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유망벤처기업을 우선 유치해 엔젤클럽과 투자펀드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연구개발활동과 업체 상호간 기술교류를 주선할 방침이다.
그는 또 “많은 업체가 지방과 동남아로 이전했고, IMF이후 부도업체도 줄을 이어 공단의 쇠락이 시작된지 이미 오래”라며 “구로공단의 명예를 되찾고 높은 지가를 감당하려면 고부가가치산업이 아니면 안된다고 판단, 이번 계획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심부인 1단지 8만여평은 벤처전문단지로, 2단지 12만평은 패션디자인 단지로, 3단지 34만평은 각각 패션디자인, 고도기술 및 연구개발단지로 특화해 공단 전체를 디지털화할 예정이다. 구조고도화작업을 통해 테헤란 밸리와는 달리 기존 제조업과 연계, 시너지효과를 거두겠다는 얘기다.
이 이사장은 “구로공단은 서울대, LG전자연구소 등과 지리적으로 인접해있고, 인천미디어밸리와 포이동 벤처밸리와도 쉽게 연결된다”며 “굴뚝산업과 첨단 벤처가 결합한 구로공단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출신인 이 이사장은 육사를 졸업, 6사단장 전속부관과 대통령경호실 차장 등을 지낸 뒤 올 1월 산단공이사장으로 부임했다.
/박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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