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인사동길 설계 김진애씨”그래 공격적으로 물어봐라. 전혀 공격적으로 생기지도 않았구만, 뭐---.”
김진애(金鎭愛 47)를 만난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지난 14일 새 모습을 드러낸 인사동 골목을 설계했다.
열 달 계속된 공사 중에는 공사가 오래 걸린다고, 공사가 끝난 후에는 `돌이 너무 많네', `길바닥에 벽돌을 깐 게 보기 싫네' 등등 험담을 듣고 있는 그에게 잘잘못을 따져볼 요량으로 만나자는 전화를 넣었다. 만난 결과는 김진애의 원사이드 게임.
속사포 같은 빠른 말투에 시원시원하면서도 조리 있는 답변에 준비해간 `모진 질문'은 헌 창처럼 쓸모가 없었다.
하긴 “신문사 동료들이 김진애를 다루려면 공격적으로 질문을 하라고 하더라”라는 기자의 첫 마디에 대뜸 “공격적으로 생긴 사람이 그런 말을 해야지”라며 맞받아치고 나올 때부터 “아하, 이거 잘못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나 그를 만난 건 즐거운 일이었다. 유익한 일이었다. 처음엔 인사동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나중엔 잡담 나누듯 돼버렸지만 두 시간 가량 주고 받은 말 중에 버릴 것이 없으면 즐겁고 유익한 것 아닌가.
_인사동에 돌이 너무 많다고 하더라. 돌을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라도 있나.(안국동 로터리에서 종로 1가 언저리까지 620미터의 인사동 골목에는 돌방석4? 돌걸상 물확걸상 물확화분 등 네 종류의 석물(石物) 113개가 길 양 옆으로 놓여있다. 원래 120개였으나 얼마 전 7개를 들어냈다)
“나도 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도 돌을 놓은 건 차도와 인도의 경계를 구분짓기 위해서다. 인사동이 보행자 전용도로가 된다면 그날로 돌을 들어내게 돼있다. 기;돌이 많다고 하지만 인사동에 사람이 가득차면 돌은 안 보이고 사람만 보인다.
사람이 없으면 돌이 많아 보이겠지.” (그는 7개를 들어낸 것은 돌이 있어 장사에 방해가 된다는 가게 주인들의 요구때문이라고 말했다.)
_돌이 너무 크지 않나. 물확걸상이나 물확화분은 물을 담을 자리가 재털이나 쓰레기통으로 쓰이기 딱 좋다는 말도 있더라.
“불법주차나 노점상을 막으려면 그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크면 필요할 때 옮기지 못한다. 물확화분이 재털이로 쓰인다고 하는데 공사가 끝나기 전의 일이다. 지금은 물확에 모두 꽃이 심겨져 있다. 가게 주인들이 심은 것들이다.
당초 내가 생각한 대로다. 어느 가게 주인이 가게 앞 물확을 재털이가 되도록 놔두겠나. 공사가 끝나기 전에 한 번 휙 둘러보고 돌이 많으니 크니, 재털이가 됐느니 해서는 안 된다.”
_길바닥에 검은 빛 벽돌을 깐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색깔이 우중충할 뿐 아니라 자동차 무게에 깨지고 겨울에는 동파될 거라는 걱정도 있다.
”검은 빛 벽돌을 고른 건 전통적 색채 중 그 색이 인사동에 가장 잘 맞고 인사동의 담담한 배경색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깨지는 게 걱정된다고 하는데 서울시에서 강도 테스트를 여러 번 하고 채택한 벽돌이다.
특히 차도는 기초를 튼튼히 했기 때문에 화물차가 지나가도 깨지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겨울에 얼어서 깨지지 않겠느냐고? 이번에 납품한 업체는 우리나라 겨울보다 훨씬 추운 일본 홋카이도에 같은 용도의 벽돌을 수출한 회사다.
물론 하나도 안 깨진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외국에서도 벽돌이 자아내는 분위기 때문에 적벽돌 포장을 많이 하는데 보통 10%의 하자가 생긴다. 나는 인사동에서 3% 정도의 하자는 있을 거로 본다. 그 정도면 성공 아닌가.”
_당신은 그렇게 말하지만 건축전문가나 미술관계자들은 이번 인사동 공사에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런가.
”글쎄, 누가 그러는가. 나는 별로 못 듣고 있는데. 하지만 그런 비판에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이번 인사동 길을 새로 설계하면서 나는 눈으로 보는 디자인보다는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디자인에 역점을 두었다.
엘리트가 봐서 좋은 것이 모든 이에게 좋은 게 아니다. 특히 길 디자인은 더욱 그렇다. 길은 무대다. 무대가 너무 요란하면 배우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편하고, 즐길 수 있고 그것이 오래 추억으로 남을 수 있으면 성공한 디자인이라고 본다.
그런 입장에서 인사동 곳곳에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많이 마련했다.” 그는 인사동 남쪽 끝의 `남인사 물동이'의 물동이와 북쪽 끝 `북인사 물길'에 만들어놓은 두꺼비는 인사동을 찾은 사람들이 물 속에 손을 담그거나 만져보면서 예전에 이 곳에 흘렀던 물길을 느껴보라고 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보고 지나가는 것 하고 만져보고 느껴보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오래 추억에 남을 것인가고 덧붙였다.
그는 돌걸상이나 돌방석 같은 석물도 사람들이 잠시나마 앉아서 인사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한 장치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노숙자들이나 취객들이 누워서 잘 수 없도록 긴 것은 좁게 만들고, 넓은 것은 한쪽 끝에 물확을 만들어 고개를 두지 못하도록 했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 나무벤치를 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_곧 추워지면 돌이 차가와 질 텐 데 누가 앉으려들까?.
”센스 있는 가게 주인이면 가게 앞 돌 위에 방석을 깔 것이다. 가게 로고가 들어있는 비단방석이면 더 좋고. 그런 아이디어가 가게를 살리고 인사동을 살리는 길이다.”
_공사가 당초보다 두어달 더 걸렸다. 그것도 욕먹는 이유 아닌가. (인사동 길 공사는 작년 12월에 착공해 지난 14일 끝났는데 기자는 회사가 인사동 옆에 있어 7월에 끝난다는 표지가 붙었다가 또 8월에 끝난다는 표지로 바뀐 걸 잘 알고 있다.
자주 가는 인사동의 한 찻집 주인은 공사 때문에 가게 안에 흙먼지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글쎄, 공사가 오래 걸린다고 처음부터 밝혔더라면 인사동 가게 주인들이 공사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사를 못 하는 날이 그만큼 길어지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이왕 하는 김에 전기선과 하수도관, 도시가스 관도 새로 묻자는 서울시 방침 때문에 지하공사 기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인사동에서 차도를 뒤집어 파헤치는 걸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필요한 공사는 인도쪽 벽돌 몇 장만 걷어내면 된다.”
_인사동을 가꾸는 건 이제 끝난 것인가.
”아니다. 뒷골목까지 다듬어야 한다. 인사동의 전체 모습은 잎사귀 모양이다. 이번에 공사를 한 곳은 4?잎사귀의 가장 굵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모세관처럼 뻗어있는 골목 구석구석까지 정비되면 그야말로 인사동은 세계적 명소가 될 것이다. ”
_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은 차도를 따라 한 번 걷는 것으로 인사동 관광은 끝이다. 뒷골목이 있지만 거의가 음식점이다. 뒷골목에도 문화상품이 들어차게 해야 한다.
한지공장 도자기공장 표구점 떡공장을 작은 규모로라도 두어 우리 문화(상품)가 만들어지는 걸 보여주면 어떨까. 그러면 인사동은 관광객을 더 오래 붙잡을 수 있게 되고 우리나라 문화산업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성장하지 않을까.”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인사동을 걸어 올라오다가 서너살 됐을까, 한 꼬마가 엄마 손을 뿌리치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북인사물길의 두꺼비를 만지러 달려가는 것이었다. (인사동에 대한 김진애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일반) 독자는 당장 가족과 함께 인사동 길을 걸어보거나 일주일쯤 뒤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www.archforum.com'을 방문해볼 것. 불만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전문가는? 김진애를 직접 만나 토론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기기는 힘들겠지만.)
편집국 부국장 soong@hk.co.kr
김진애의 경력은 화려하다. 성공한 듯 보인다. 1971년 `7년만의 첫 여자공대생'으로 서울공대 건축에 입학한 그는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산본신도시를 설계했다.
1991년에는 서울포럼이라는 회사를 차려 운영해오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4년에 그를 빌 게이츠, 존 F 케네디 2세 등과 함께 `21세기를 이끌어갈 미래의 지도자 100인'중의 한 명으4?로 뽑기도 했다.
_당신처럼 성공하고 싶어하는 젊은이에게 해줄 말이 없나.
”내가 무슨 성공을 했나. 그런 질문이 제일 당혹스럽다. 성공은 권력 돈 명예를 말하는 데 글쎄 이름이야 났겠지만 그걸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돈이라면 IMF를 지나면서 빚만 졌다. 나는 `성공'이란 말보다는 `의미'라는 말을 하고싶다.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게 성공이란 말이다. 젊은이들에게 굳이 한마디 해야 한다면 `홀로서라, 즐겨라, 인생에는 행복보다 고난이 더 많다,
고난까지 즐길 수 있도록 해라'라고 하고 싶다.” 그러더니 그는 기자에게 “왜 내 좌우명도 묻지 그러냐, 좌우명은 일을 즐겨라, 일을 만들어라라는 것이다'고 단숨에 말해버렸다.
_어찌 그렇게 말을 잘 하냐, 내가 뭘 물을 여가도 안주고 혼자만 쏟아내니 그런 것 아니냐.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른들이 내가 말이 많다고 하는 걸 듣고는 대학교 때까지 입을 닫고 살았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는데 그 동안 못한 말을 하는 것 같다.”
올해 11년째 된 서울포럼은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아웃 소싱'개념으로 출범했다. 소수의 인력만 두고 일이 생길 때마다 외부 전문가들과 협력해 일을 추진해나가는 스타일이다. 요즘은 이런 식의 회사가 많이 생겼지만 당시로서는 `미래형 회사'였다.
“선견지명이 있어서 였나”고 물었더니 “여자였기 때문이다. 조직관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 였다”고 말했다. 실력과 행동이 남자이상이라는 말을 듣는 그이지만 역시 어떤 한계를 느낀다는 말로 들렸다.
그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두 가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절을 설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의 시설계를 맡아보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유일신 개념보다는 만물신 개념에 빠져들어간다. 절은 깨달음을 만드는 공간이라고 하는데 그게 과연 무엇인가를 자주 생각한다. 여자에게 절 설계를 맡기지는 않겠지만 꼭 해보고 싶다.”
“개방이후 중국의 도시는 서울 이상으로 망가지고 있다. 북한이 만일 개방되면 그 이상으로 망가질 것이다.
그걸 막기위해서도 북한의 도시설계를 맡고 싶고, 미국 영향을 많이 받은 남한과는 달리 러시아와 유럽의 영향을 받은 북한의 도시에서 작업해보고 싶은 게 건축가로써의 욕심이다.”
그는 책도 많이 썼다. 벌써 15권이나 된다. 반응도 괜찮았다. 추리소설을 준비한다는 말이 있어서 물어보았더니 인사동을 무대로 하는 소설 줄거리를 구상해놓았다고 말했다.
그런 말 끝에 그는 “이번에 인사동 작업을 하면서 어느 구석에 나만의 비밀을 하나 숨겨 두었다. 내가 죽을 때쯤이면 말하겠지만 지금은 밝힐 수 없다”고 묻지 않은 말을 했다. 기자는 그 말을 듣고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푸코의 추'를 떠올렸다.
그에 대한 기자의 마지막 소감. 타임지에 의해 `21세기의 세계지도자'로 꼽힌 김진애는 말은 활달했지만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인사동 설계에 대한 비판때문인지, 사업이 잘 안 풀리기 때문인지는 아니면 자신에 대한 기대가 너무 부담이 되었던 것인지, 인사동 골목길을 인파에 묻혀 걸어 내려가는 그가 어딘지 쓸쓸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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