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더 많이 얻고도 낙선한다.'투표일을 불과 보름 앞두고도 승부를 점칠 수 없는 대혼전 양상의 올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전국 득표율에서는 앞서고도 선거인단 확보수에서 뒤져 패배하는 기상천외한 양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이른바 `미국판 대선괴담'이라 할 이런 가정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득표율에서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를 누르고도 선거인단 집계에서 밀린다는 내용이다.
타임 최신호와 내셔널저널 등 일부 주간지에서 제기한 이같은 가설에 선거전문가들도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어 부시 진영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괴담은 독특한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에서 기인한다.
미국 대선은 50개주에 인구비례로 할당된 선거인단을 투표로 선출하고 이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일종의 간선제로 치러진다. 총 선거인단은 538명으로 과반수인 270명 이상을 확보하는 후보가 승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각 주마다 최다득표를 한 정당이 그 주의 선거인단 전부를 차지하는 승자독식 방식 때문에 득표율과 선거인단 확보 비율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등 선거인단이 많이 배정된 일부 거대주에서 근소한 차이로 최다득표를 해 선거인단을 대량 확보한 대신 군소주에서 큰 표차이로 패할 경우 `득표율 패배, 선거는 승리'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올해의 경우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현재 고어 후보는 최대 표밭인 캘리포니아(54명)를 비롯 뉴욕, 뉴저지 등 뉴잉글랜드 지방과 미네소타, 아이오와, 일리노이 등 일부 중부지역주 등 15개주에서 우세를 보여 선거인단 192명정도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부시 후보는 고향 텍사스를 비롯 중서부지역과 남부지역을 관통하는 이른바 `L자 벨트'지역 등 18개주에서 앞서 145명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플로리다, 미시건, 오하이오 등 17개주는 아직 혼전양상. 그런데 고어는 대부분 5%포인트 내외의 근소한 차이로 우세를 점하고 있는 반면 부시는 중서부지역 등에서 10%포인트가 넘는 압도적 차이로 리드를 지키고 있다.
때문에 플로리다, 미시건 등 중대형 혼전주에서 고어가 막판에 선전해 아슬아슬한 차이로 승리할 경우 고어가 득표율에서는 밀리고도 과반수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 대선 역사에서 이처럼 `득표율 패배, 선거 승리'결과가 나온 것은 딱 한 번 있었다. 112년전인 1888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벤자민 해리슨 후보는 민주당의 그로버 클리블랜드 후보보다 9만여표를 적게 얻고도 선거인단을 65명 더 확보해 23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행운을 누렸다.
올해 이같은 현상이 재현될 경우 미 정치권에서는 한때 거론됐던 직접 선거로의 선거법 개정 움직임이 다시 일어날 지도 모른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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