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23쌍의 염색체 중 어느 한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공기 중의 이상한 `바이러스' 가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환자를 둘러싼 주위의 미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환경 탓인가.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정신병'과 그 환자는 일종의 `합리주의'의 산물이다. 일반적인 규범과 좀 다른 사람을 `정신병자' 라 호명하고, 그들을 격리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두 세기가 넘지 않는다. 인류는 더 많은 시간 동안 정신병자들과 함께 살아왔다. 영화 속 세상에서 정신병자, 혹은 바보는 규범적 논리에 빠진 인간들이 놓치고 있는 좀 다른 진실을 상징한다.
일본 영화에서 `백치' 혹은 `정신병자'의 이미지는 영화의 중요한 모티프이다. 21일 개봉하는 오시마 나기사의 `열정의 제국'은 이웃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인의 치정극이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댄다. “누구 누구는 남편이 죽었는데도 젊은 남자랑 잘만 놀아나고 있다네.” 여주인공 세키가 한 밤에 술을 사러 오자 술집 주인은 말한다. “이 밤에 누굴 주려고 술을 사가시나.” 이웃들은 모두 두 사람을 의심하고 수군거린다. 그들에게 두 사람의 사랑이나 욕망은 아무 것도 아니다.
치정의 두 주인공에게 `공기'와도 같은 존재가 바로 토요지의 동생이다. 토요지 앞에서 그들은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그가 둘의 얘기를 들을까봐, 또 그것을 소문낼까봐 숨기는 것은 없다. 오시마 나기사는 오로지 정신병자인 동생만이 본성에 충실한 두 사람의 욕망을 인정하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정신병자 동생의 `무지'는 단순한 무지가 인간적 판단을 유예한 너른 의미의 휴머니즘과 상통한다.
역시 일본의 거장 감독인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 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전개된다. 섹스를 못해 거의 정신이 나간 동네 노총각은 개와, 동네 할머니의 성교를 한다. 쇼헤이 감독은 이런 일탈적 행위를 통해 인간의 욕망도 결국은 커다란 자연의 욕망의 법칙 중 부분 집합에 지나지 않음을 얘기하고 있다.
일본영화는 그것들을 `정신병자' 라는 거울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그만큼 `상식의 틀' 은 정상인의 일탈에 대해서 엄격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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