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신도시 B중 3학년 장모(15)군의 하루 일과는 다음날 오전3시에 끝난다. 학교수업을 마치면 학원의 B고교 진학반으로 달려간다. 자정이 조금지나 학원이 끝나면 무거운 가방에 처진 어깨를 추스리며 독서실로 이동해 마무리 복습을 한다. 장군은 고교 입시에 내신성적 비중이 너무 높아 단 한 과목이라도 게을리하면 항상 불안해 암기과목까지 수강하고 있다며 집으로 향했다.7년전 분당에 이사온 학부모 이모(46 회사원)씨는 매일 중학교 2년생 딸(14)의 귀가를 돕느라 올빼미 생활이다. 이씨는 딸이 학원을 마치는 자정무렵 학원에 마중나가 승용차로 함께 귀가한다. 이씨는 교육이 아니라 아예 극기훈련이라며 신도시에 이사온 것을 몹시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입시 비평준화지역인 일산 분당 평촌 등 신도시 중학생들이 고3이 되서야 겪을 입시전쟁을 앞당겨 치르고 있다. 특히 일부 대학이 2002학년도 입시부터 학교생활기록부 성적을 고교별 차등 반영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세칭 명문고를 향한 올빼미 입시준비가 극에 달하고 있다. 입시 스트레스를 힘겨워하다 지쳤다며 자살하는 신도시 중학생이 한두명이 아니고 자녀의 진로를 고민하다 신도시 탈출를 감행하는 가족수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 비평준화지역의 고입 전? 분당S, 안양A고교 등 명문고에 진학하려면 반에서 5등안에 들어야 학교에서 원서를 써주고 최소한 3위안에 들어야 합격 안정권이다.
일산 B중학교 L모(40) 교사는 명문고 진학이 명문대 입학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 때문에 학생들이 너무 일찍부터 입시공부에 매몰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 때문에 신도시 지역은 중학생을 대상으로한 입시학원이 성시를 이루고 학부모마다 중학생 1명당 월 20만원이 넘는 사교육비로 고통받고 있다.
심지어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출입문을 잠그고 폐쇄회로 TV 감시속에 새벽 1~2시까지 공부하는 감금학원까지 등장했다.
분당 A중 2학년 김모(14)군은 학원에서 매일 모의고사를 쳐서 한문제 틀릴 때마다 한대씩 강사로부터 매을 맞고 있다며 학교에서 선생님이 이런 식으로 때렸다면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가 빗발ダ~ 것이다고 말했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가 학교 교사보다 학원 강사의 권위를 더 높여주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외금지 위헌결정이후 신도시 학원들은 새벽3시까지 자율학습, 학교처럼 급식 제공 등을 내걸고 학생들을 끌어모으는가 하면 내신대비 특강을 개설해 중간 기말고사 때면 음악 미술과목까지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가르친다.
이같은 고교입시 과열로 초등학교 4학년부터 명문고에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이 성행하고 명문고에 진학하기 힘든 학생의 부모들은 다시 서울로 이사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최근 분당에서 서울 강남으로 이사온 주부 이모(46)씨는 중학교 2학년 딸이 명문고에 진학하지 못할 경우 4?기가 죽을까봐 서울로 다시 이사를 했다며 이같은 이유로 분당을 떠난 학생수는 지난 한해동안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명문고를 다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에 위화감도 심각하다. 일산에서는 B고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여고생과 나란히 걸으면 공부도 잘하고 연애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학교 학생이 여학생과 다닐 때는 공부도 못하는 애들이 연애만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급우들 사이에 노트도 빌려주지 않는 살벌한 경쟁이 벌어지고 일부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학생들의 탈선마저 부추기는 등 인성교육에도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또 내신성적 반영비율이 높아지면서 중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내신성적 관리에 골몰해야 하고, 수행평가 성적을 잘 받기 위해 학부모가 대신 숙제를 해주는 등 여러가지 비교육적인 행태가 빚어지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박이선(朴二仙 38)고양시지부장은 수도권 비평준화 도시가 서울과 같은 교육여건이지만 경기도교육청이 고입 선발고사를 고집해 자녀들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교육개발원 여론조사결과 신도시 주민 73%가 고교평준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만큼 조속히 평준화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경기도교육청은 올 1월 한국교육개발원에 의뢰한 평준화 실시여부를 위한 용역조사결과를 토대로 11월말께 평준화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김혁기자 hyukk@hk.co.kr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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