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공산당의 대부로 활동해 온 거스 홀(사진)이 지난 13일 뉴욕 맨하탄 레녹스 힐 병원에서 당뇨병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17일 밝혀졌다. 향년 90세.수년간 투옥생활과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에도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고수했던 홀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필연이며 장애가 있을지라도 결국 그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1910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핀란드 이민 2세로 태어난 홀은 목수와 제철노동자로 종사하던 16세 때 공산당에 입당했다. 1931년부터 2년간 소련 모스크바의 레닌 인스티튜트에서 수학한 그는 귀국 후 오하이오주와 미네소타주에서 노동자 저항운동을 이끌었고 2차대전 중에는 해군에 입대하기도 했다.
홀은 결국 1949년 연방정부 폭력전복 교사 혐의로 체포돼 8년 6개월간 복역했고 출옥 후 1959년 공산당 당수로 선출됐다.
홀은 연방수사국(FBI) 등 권력기관으로부터 지속적인 견제를 받아왔으며 수년간 신용카드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1930년대 당원 10만 명을 구가했지만 1990년대 1만5,000 명으로 줄어든 것도 정부의 탄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 공산8? 국가에선 아낌없는 지원이 쇄도해 소련으로부터 최고 영예인 레닌 훈장을 받았고 1987년에는 200만 달러의 활동비를 지원받았다. 또 뉴욕의 사무실에는 북한 김일성(金日成) 주석으로부터 생일선물로 받은 인삼차가 비치돼 있었으며 벽에는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선물한 풍경화가 걸려 있었다.
최근까지도 대학 강연과 라디오 토크쇼 출연 등 왕성하게 활동해 온 그는 “낯선 사람들에게 내가 공산주의자라고 소개하면 대부분 믿지 않았지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고 말해왔다. 미국의 많은 자본가들도 홀을 쾌활하고 공산주의자의 생활을 유쾌하게 들려주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이주훈기자
ju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