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입구. 아시아ㆍ유럽정상회의(ASEM) 개막을 이틀 앞두고 어머니 최모(31)씨를 졸라 이곳에 놀러온 강모(5)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글을 갓 뗀 강군은 외국어 투성이인 간판을 가리키며 “저건 무슨 뜻이야” 라고 연신 물어댔다. 최씨는 지친 나머지 “외국 손님들이 와서 그렇게 해 놓은 거야”라며 얼버무렸다.단군 이래 최대 국제행사라는 아셈 회의장 코엑스에는 `한국 색깔'이 없다. 전체가 외국어 `전용공간'이다. 하루 평균 내외국인 7만명이 찾는 코엑스몰은 물론 코엑스 본관에 들어선 업소 간판은 거의 대부분 로마자로 표기돼 있다. 반면 정작 널리 알려야 할 것들은 한글로 적어놓고 있다. 세계를 상징하는 직사각형 판 위에 장보고 장군 일행이 탄 폭 10m 높이 5m짜리 근사한 배 모양의 금속구조물에는 “동아시아 무역사를 바꿔놓은 선구적 인물”이라는 우리말 안내문만 있다.
코엑스몰의 유일한 `한국전통'인 김치박물관은 지하 2층 주차장 옆 구석에 있어 한국인들조차 찾기 힘들다. 개막식이 열리는 컨벤션센터의 아셈홀과 오라토리움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흔한 태극 문양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한복 차림의 마네킹 6개와 한국 작가의 그림만이 이곳이 한국임을 알려줄 뿐이다. 코엑스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한국의 대표건물로 부각시킬 기회를 놓친 셈이다. 아셈 준비기획단 관계자는 “고궁 방문이나 이벤트를 통해 한국을 알리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코엑스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국제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강 훈 사회부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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