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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동성애와 열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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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 / 동성애와 열린 사회

입력
2000.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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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둥지를 뒤지다보면 가끔 별나게 알이 많이 담겨 있는 둥지들을 본다. 대개 한 둥지에 두세 개의 알들이 들어 있는 게 보통인데 어떤 둥지에는 대여섯 개의 알들이 비좁게 놓여 있다. 갈매기는 동물세계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채택하며 겉모습만으로는 암수를 구별하기 대단히 힘들다. 그런데 이처럼 `거대 둥지'를 지키고 있는 갈매기 쌍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둘 다 암컷이다. 이른바 레스비언 부부다.레스비언 갈매기 부부가 낳은 알들은 대부분 수정이 되지 않은 알들이라 아무리 품어도 부화하지 않지만 때로 10-20%의 알들에서는 새끼들이 태어난다. 레스비언 갈매기들의 일부가 양성애자라는 말이다.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 채찍꼬리도마뱀들은 거의 모두가 레스비언들이지만 아무 문제없이 새끼를 낳는다. 그들은 모두 수컷의 도움 없이 처녀생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에서 동성애 행위가 관찰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일명 보노보(bonobo)라 불리는 피그미 침팬지의 사회는 전반적으로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다. 암컷들은 맛있는 먹이를 얻기 위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성을 제공한다. 암컷들은 수컷들뿐만 아니라 다른 암컷들과도 온갖 성행위를 즐긴다. 버금수컷들은 종종 으뜸수컷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그의 성기를 만져주며 아부한다. 수컷들간의 구음(口淫)도 흔히 있는 일이다.

집에서 암코양이들만 따로 키워본 사람이면 그들끼리 암수가 벌이는 성행위를 죄다 하는 걸 보았을 것이다. 동물세계에서 동성애는 너무도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어 그 예들만 모아놓은 책이 작은 백과사전을 넘본다. 동성애를 단순히 병리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오히려 인간사회에서는 왜 이렇게 드물까 의심해야 할 것이다.

정말 드물어서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까, 아니면 대부분 숨어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일까? 침팬지나 보노보에서 그렇게 흔한 행동이라면 그들과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려나와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초원을 헤매던 시절의 인간들에게는 그리 낯선 행동이 아니었으리라. 실제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동성애가 매우 자연스런 일이었지 않은가.

최근 어린이 방송을 진행하던 한 연예인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난 다음 출연이 금지되었다. 동성애가 이미 드라마의 주제로도 다뤄진 즈음에 무슨 때늦은 법석인가 싶다. 마치 동성애가 무슨 전염성 질환인 것처럼. 동성애자와 옷깃이라도 스치면 금새 동성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학문 성격상 외국 학자들을 자주 맞이하게 된다. 서울은 이제 지나칠 정도로 서구화하여 그들에게 그리 낯선 곳이 못되지만 거리 풍경을 한참동안 지켜보던 그들이 조심스레 던지는 말이 있다. “너희 나라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인 모양이다.” 젊은 여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우리 사회의 `열린 성문화'에 그들은 적지 않게 놀란다. 동성애는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자연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닫힌 가치관'의 제물이 돼서는 안 될 일이다.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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