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얻고, 색깔도 분명히 찾았다.”14일 홍콩 왕자웨이 감독의 “화양연화” 로 막을 내린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PIFF)를 놓고 참가한 국내외 영화인과 팬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세계영화의 흐름을 읽는 아시아 최대 축제로서 자리를 잡았고, 아시아영화의 중요한 기지로서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산영화제는 갈팡질팡했다. 관객들의 호기심에 맞춰 지나치게 일본영화에 매달리는가 하면, 부대행사 등 겉치레에 매달려온 것도 사실이다.
올 부산국제영화제는 달랐다. 우선 규모에 집착하지 않았다. 초청국가와 작품수도 지난해와 비슷했고, 관객동원 (18만여명)도 같았다. 입장권 판매가 지연되거나 필름의 순서가 뒤바뀌고, 중국 지아장커의 `플랫폼' 은 필름이 늦게 도착해 한글자막을 넣지 못한 채 한차례 상영되는 운영의 미숙도 있었다. 전문인력이 없어 영화제 업무에 일관성이 부족한 점도 드러났다.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올 부산영화제는 `축제와 생산의 장' 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어느 때 보다 해외유명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만큼 부산영화제가 세계에 알려졌다는 것이고, 중요한 아시아 영화시장의 교두보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벤더스, 마흐말바프, 장만옥 같은 유명 감독?이나 배우들이 자신들의 영화를 위해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난해까지와는 달리 관객들의 다양한 영화선택과 `관객과의의 대화'에서 보여준 진지한 태도도 축제로서 영화제를 더욱 알차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부산영화제는 이제 명실공히 아시아영화의 제작과 수출의 중요한 기지가 됐다. 3회째 접어든 부산프로모션플랜 (PPP)에는 이와이 순지, 차이밍량, 장위엔 같은 아시아 스타감독들이 프로젝트를 내놨고, 지난해보다 40%나 늘어난 20여개국 120개사 450여명의 영화인이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250여건의 미팅을 가졌다. 송일곤의 `칼' 의 경우 프랑스 카날플뤼스가 제작비 50% (10억원), 일본 NHK가 공동제작을 제의하는 등의 성과를 얻었다.
더구나 1, 2회 때 참가한 프로젝트중 10여편이 제작돼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됨으로써 PPP의 성과를 뒷받침해 주기도 했다. 때문에 PPP는 이제 아시아 감독이면 누구나 참가하고 싶어하고, 아시아영화 생산을 직접 도모하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영화수출을 위해 올해 처음 시도된 `인더스트리얼 스크린닝' (13편) 과 세일즈 부스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시네시티 4관에서 진행된 13편의 한국영화상영에 대한 외국 수입사들의 높은 관심은 부스를 마련한 6개 영화사에서 하루 15~ 20 건의 상담으로 이어졌다.
5회를 거치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관객이 와서 보지 않으면 안되는 영화제, 해외 유명 감독이나 배우들은 자기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영화제, 아시아와 한국영화는 투자자를 모으고 수출을 하는 최고의 마켓으로 발돋움했다. 남은 과제는 이를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 이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내년에는 스크리닝 참가편수와 극qm 도 늘려 본격적인 한국영화 마케팅을 해 나가겠다” 고 밝혔다.
부산=이대현기자 leedh@hk.co.kr
■부산영화제 수상작들
이란 마르지예 메쉬키니의 `내가 여자가 된 날' 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 의 최고상인 최우수아시아 신인작가상을 차지했다. 폴란드 크지스토프 자누시 심사위원장은 14일 “이란 여성의 현실을 3개의 에피소드로 너무나 뛰어나게 표현해 쉽게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고 밝혔다. 수상작은 한국내 배급을 보장한다.
아시아 감독의 데뷔작이나 두번째 작품 중에서 선정하는 국제평론가 협회상은 일본 유키사다 이사오의 `해바라기' 에게 돌아갔으며, 임상수 감독의 `눈물' 은 스페셜 맨션(특별 언급)에 그쳤다. 한국영화로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이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상,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가 관객이 뽑은 PSB영화상을 받았다.
한편 부산프로모션 플랜(PPP) 최고의 프로젝트에 주어지는 부산상 (상금 2만 달러)은 중국 로우예의 `여름궁정' 과 홍콩 출신의 유릭와이가 한국영화사를 통해 내놓은 `부산이야기' 가 공동 수상했다. 한울상은 `소풍'으로 유명한 송일곤이 장편 데뷔작으로 내놓은 `칼' 이 차지했고, 박광수 감독의 `방아쇠' 는 후반작업을 지원하는 코닥상과 KF- MAP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이밖에 호주 클라라 로의 `인공새' 와 중국 장밍의 `주말음모' 가 KTB상과 후버트 발트상으로 각각 제작지원을 받게 됐다.
■폐막작 '화양연화' 주연 장만옥.양조위
처음 부산을 찾은 장만옥은 폐막작 `화양연화' 는 자신에게 “특별한 영화” 라고 했다. 부산을 찾은 것도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특별함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순간 이런 작품을, 이런 배역을 맡았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다. 항상 이런 배역을 찾아 다녔지만 그동안 찾지 못했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15개월 동안이나 촬영을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 특별함에 매료된 탓일까. 그는 제목처럼 `가장 아름다운 순간' 을 원숙하고, 애틋한 분위기로 연기했다. “양조위의 풍부한 경험과 프로다운 자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기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서로 공감했다. 연기에는 직감이나 감각이 더 중요하다.”
둘은 `아비정전' 이후 한번도 다시 영화에서 만나지 못했다. 이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양조위는 “그래서 다시 한번 함께 일하고 싶었다. 10년전보다 훨씬 좋은 느낌이었다” 고 했다. 왕자웨이 감독은 보통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배우를 결정하는 것과 반대로 `화양연화' 만큼은 두 배우를 먼저 캐스팅하고 나서 배qm 에 맞게 스토리를 발전시켰다고 했다. 그만큼 1960년대 홍콩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담은 `화양연화' 는 배우의 영화란 얘기이다.
장만옥은 아파트로 공간이 제한된 상황에서 색상이 다른 옷을 계속 갈아 입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었고, 같은 디자인을 고집하는 것으로 인물의 내면 심리를 묘사했다. 너무 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고개를 저었다. “홍콩사람들은 바쁘게 생활하고 여러 상황에 적응을 잘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즐기면서 그 일을 하느냐 이다.”
두 배우는 모두 `지금' 이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했다. “항상 지금이 가장 아름답도록 살겠다” (장만옥). “지금의 나는 극단적이지 않고, 즐길 수 있으며, 더 잘 할 수 있다” (양조위).
부산= 이성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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