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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씨 55년만에 목놓아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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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씨 55년만에 목놓아 "누님"

입력
2000.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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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만에 만난 열일곱 곱던 누님은 들풀처럼, 질경이처럼 늙어버리셨더군요. 헤어질 때 더 오래 껴안고 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행사 참관차 방북했다가 누나 인숙(仁淑ㆍ72)씨를 만난 백기완(白基玩ㆍ67ㆍ통일문제연구소장)씨는 15일 누님과 자신의 눈물, 콧물이 묻은 손수건을 품에서 꺼내보이며 또 한번 감회에 젖었다. “누님을 보자마자 부둥켜 안고 1시간 동안 울었습니다. 회한과 아픔으로 오열이 멈추지 않더군요.”

백씨가 누님과 헤어진 것은 1945년 광복 직후. 황해 은율군 장연면이 고향인 백씨는 13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축구를 하려고 서울로 왔다. 이듬해 여동생과 작은형도 뒤따라 월남했지만 50년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북의 어머니와 할머니, 누나, 큰형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 “늘 살아계신 것으로 믿었던 어머니(홍억재ㆍ洪億財)께서 63년 돌아가셨다는 누님의 말에 또 한번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53년부터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을 하면서도 신문에다 편지까지 쓰며 그리던 어머니였는데….”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인 13일 점심과 저녁 2차례 평양 시내 단고기집과 냉면집에서 누님과 만난 백씨는 “55년 한을 풀기엔 4시간은 널? 무 짧더라”고 아쉬워 했다. 그는 “누님이 `네가 4살때 내 등에 업혀 사탕을 사주지 않는다고 나를 꼬집던 일이 기억나느냐'며 `도토리처럼 귀엽던 네가 왜 이렇게 늙었느냐'고 오열할 땐 꺼이꺼이 울었다”고 해후의 순간을 떠올렸다.

선물도 제대로 준비 못한 그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시계, 목도리 등을 사 남에서 가져간 호박엿과 함께 누님에게 건네고 왔다. 백씨는 “누님이 곱게 건네주신 술 2병을 받아들고 통일될 그날까지 오래오래 살아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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