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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가오싱젠 단독인터뷰 / 문학 인간조건 건드리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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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가오싱젠 단독인터뷰 / 문학 인간조건 건드리는것

입력
2000.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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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의 첫 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출신 프랑스 국적의 작가 가오싱젠(高行健ㆍ60). 또 한번 예상을 벗어난 수상자가 된 그는 13일 오전 2시(현지시간 12일 오후 7시) 파리 베르뇌이가에 있는 국립도서센터에서 만났다. 예정시간보다 30분여 늦게, 낡아 보이는 가죽반코트에 스웨터와 면바지, 캐주얼화 차림으로 나타난 가오싱젠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박한 인상이었다. 이질적 체제와 문화의 4선을 넘어야 했던 망명객의 얼굴은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얼굴은 상기된 채 능숙한 불어로 답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수상 소감은.

“꿈만 같았다. 크나큰 감동이었다. 살아있는 작가에게 노벨상은 최대의 행복이다.”

-언제 수상소식을 들었는가.

"공식 발표 15분 전에 스웨덴 한림원의 연락을 받았다. 실감도 못했는데 기자들이 몰려오고 전화통에 불이 났다.”

-중국의 반응은 어떤가, 혹은 무반응이 당신을 놀라게 하지 않았는가.

"중국의 반응을 알거나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공산정권이 들어서서 과거의 전통을 다 무너뜨렸다. 나는 중국의 전통을 소중히 여긴다.”

-당신의 수상이 중국의 박해받는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리라 보는가.

"지금까지 나의 모든 작품들이 중국에서는 탄합을 받았다. 내가 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런 사실이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낙관하지 않는다.”

-당신 작품은 몇 개 외국어로 번역이 됐나.

“영어, 불어, 스웨덴어, 독일어, 이태리어, 폴란드어 등이다. ”

-불어가 첫 외국어 번역인가.

“아니다, 스웨덴어가 첫번째로 번역된 언어이다. 번역자는 유명한 중국학자이고 한림원 회원이다.”

-불어는 당신의 작품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중국에 있을 때 불어로 작품을 쓰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로 망명한 뒤 친구들이 불어로 작품을 쓸 것을 많이 권유했다. 희곡은 불어로 많이 썼지만 소설은 지금도 중국어로 쓴다.”

-어떤 문학을 좋아하는가. 어떤 문학을 추구하는가.

“나는 굉장히 많이 읽는 편이다. 프랑스 고전작가는 거의 다 읽었다. 서양 고전을 어려서부터 중국어 번역으로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의 희곡도 좋다. 프랑스 현대 작가들도 좋아한다. 나는 문학의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한다. 형식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 문학이 인간 조건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문학의 본질은 인간 조건을 건드리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나약함을 수용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프랑스로 망명한 이유는.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프랑스 문화부의 초청을 받았다. 1987년 독일 재단 초청으로 방독했다가 그해 말 크리스마스 때쯤 프랑스에 도착했다. 중국을 떠난 이유는 정부에 의해 책이 출판·판매 금지를 당하고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안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파리에 있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천안문 사건을 접하고 정치 망명을 결심했다. 이후 프랑스 뿐 아니라 서구의 친구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다. ”

-그렇다면 당신은 중국 작가인가, 프랑스 작가인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중국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은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으니 프랑스 작가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는가. 프랑스 작가라는 호칭에 편안함을 느낀다. 게다가 국가나 국경이라는 것은 내가 쓴 작품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새뮤얼 베케트가 프랑스 작가인가 아닌가가 중요한가? 나는 프랑스를 좋아한다. 또한 중국의 문화를 사랑한다, 중국의 전통도. 하지만 현재의 중국은 다르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가.

“정치를 혐오한다. 그러나 나는 정치에 휘말려들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비판할 수 있는 권리, 개인의 독립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공산당원이었지만 당을 떠나고 나서는 완전히 배척당했고 베이징에서 하던 연극 일도 빼앗기고 아파트도 몰수당했다. 그래서 망명을 신청했다. 마오쩌둥 시대의 전제정치를 고발하는 것은 역사가의 4?일이고 작가는 보편적 인간조건을 다뤄야 한다. 단순히 나치를 고발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왜 그것이 생겼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가족과 접촉이 있는가.

“내가 중국을 떠나기 전에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촛m 골로 노역을 갔다가 강에 빠져 돌아가셨는데 소설에서도 그것을 그렸다. 아버지는 문화혁명 당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가 이후 사망했다.”

-노벨상 수상을 의식하거나 바란 적이 있는가.

“상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쓸 수는 없다.”

-아시아 지역 작가로는 네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탔는데 평소 아시아문학에 대한 생각은.

“아시아문학, 특히 일본문학을 좋아한다. 많이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문학은 번역이 안돼 있다. 일본 작품은 불어 번역으로 읽었다.”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돌아갈 수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을 할 수 없다면 왜 돌아가겠는가.”

-당신은 지금까지 화가로서 더 인정받지 않았는가. 그림이 당신의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림은 생계를 해결했고 나에게 글을 쓰는 사치를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둘 다 꼭 같이 중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같이 해 왔다.”

-당신이 최근작 `고독한 인간의 서(書)'에서 자신의 과거를 벗어나려 한 것처럼, 노벨상 수상으로 당신은 과거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겠는가.

“나는 일단 작품을 쓰고 나면 거기를 초월한다. 아무튼 시간의 거리로 볼 때 중국에서는 내가 쓴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문화혁명 초기에 Gm 열을 피해, 내가 쓴 가방에 가득 든 원고를 모두 불태워야 했다. 그것은 내가 자신에게 테러를 하는 것같은 쓰라린 고통이었다.”

파리= 하종오기자 joha @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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