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시의 처음이자 끝이다. 과거의 시가 광대나 음유시인의 노래였다면, 시 독자가 거의 사라질 미래의 시 역시 노래 가사에 그 생명을 의탁할 것이다. 스페인 현대시의 좌장이라고 할 만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하나가 '노래들'(1927)이라는 표제를 취한 것은 그래서 그럴 듯하다.시를 고향 안달루시아의 전통민요 리듬에 담아내며 '안달루시아의 나이팅게일'로 불렸던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 내전이 터진 직후인 1936년 8월 19일 그라나다 근처에서 파시스트 반란군에게 살해됐다. 서른여덟살 때였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73년 9월 13일, 칠레의 산티아고에서도 한 시인이 파시스트 반란군에게 살해됐다. 시인이기에 앞서 가수였고 문화운동가이기도 했던 그의 이름은 빅토르 하라다. 하라는 자신이 지지하던 아옌데의 인민연합 정부가 미국 CIA의 사주를 받은 칠레 군부의 반란으로 무너지게 되자, 그에 항의하다가 체포돼 살해됐다. 하라도 그 때 서른 여덟 살이었다.
하라의 노래들은 1960, 7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풍미하던 노래 운동의 한 정점에 있다. 그 노래 운동은 흔히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 운동이라고 불린다. 하라의 목소리를 통해 크게 퍼진 '벤세레모스(우리는 ~? 길 것이다)' 같은 노래는 우리 노래 운동권에도 알려져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에서 '그 날이 오면'에 이르는 80년대 민중가요들은 60, 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노래들'과 많이 닮았다. 한국의 민중 가요든 '새로운 노래'든 이 노래들이 희원하고 있는 것은 압제로부터의 해방, 사랑과 우애,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 같은 것이다. 그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들은 노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다.
노래평론가 배윤경(32) 씨는 최근에 낸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이후)라는 책에서 빅토르 하라와 새 노래 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표제의 '천일'이란 1970년 9월부터 1973년 9월까지 아옌데의 인민연합 정부가 존속했던 3년간을 뜻한다. 선거를 통해 수립된 세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정부였던 아옌데 정부는 하라의 입을 통해 불려진 노래들의 보금자리였다. 책 뒤에는 하라의 중요한 노래 가사들을 스페인어-한국어 대역으로 실었고, 짧은 노래 스무 곡을 담은 CD도 덧붙였다. 제5부에서 하라를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한국 시인 김남주, 가수 안치환과 병렬시키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인상적이다.
하라가 노래로서 꿈꾸었던 사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라의 노래들은 한 이상주의자의 순정함으로, 서정적이고 한스러운 감미로움으로 빛난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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