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 A아파트에 사는 박모(45ㆍ택시기사)씨. 당장 급한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를 틀어막다보니 아파트관리비가 벌써 4개월째 밀렸다.박씨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찾아올 때마다 다음달에는 꼭 내겠다고 사정사정해 돌려보낸다”며 “요즘 수입 같아서는 다음달도 기약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김모(43)과장은 “5,000여가구 중 750여세대가 관리비를 제때 못내고 있다”며 “이중에 절반은 5개월 이상의 장기 연체자”라고 전했다.
IMF 사태이후 다시 경제상황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아파트 관리비는 물론이고 국민연금, 핸드폰사용료, 신용카드대금, 가계대출금 등 각종 납부금의 연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특히 서울지역 아파트 관리비의 경우는 중산 서민층 아파트를 막론하고 연체율이 보통 15%대를 넘어선다.
지난달 전체 800세대 중 20% 이상 관리비를 연체한 노원구 모아파트 관리사무소 이모(33)씨는 “올 봄 이후 연체자가 늘어나는 속도는 IMF 사태 당시를 넘어설 정도”라며 “독촉장도 보내고 사정도 해보지만 `장사가 안돼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호소하는데는 어쩔 도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비교적 중산층들이 많은 34평짜리 강동 B아 m트도 전체 224가구 중 14%에 해당하는 30여가구가 미납상태이다.
아파트 관리직원은 “3개월이상 장기 체납할 경우 단전과 단수를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그때서야 돈을 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재산 가압류를 하겠다고 강수를 쓰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절차가 복잡해 그러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국민연금공단도 연체자들의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단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현재 지역가입자 580만명 중에 1년이상 연체자가 112만명이나 된다.
경기 안산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연체자 정모(41)씨는 “당장 생활비 벌기도 벅찬데 노후를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신용카드 대금이나 핸드폰 이용료는 연체 경험이 없는 사람이 드물 정도. 회사원 김모(31)씨는 “지난달 카드대금 220여만원을 못막아 숱한 독촉전화 끝에 다른 카드로 급전을 대출받아 겨우 막았다”며 “나같은 적자인생이 동료들의 절반에 이른다”며 푸념했다.
S생명 보험상품의 경우 1,700만건 중에 월평균 140만건이 연체되고 있으며 D화재의 손해보험상품 가입자 120만명 중에 8만여명이 늘 연체상태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D화재 관계자는 “보험료를 독촉할 경우 대부분 1개월이내에 납부하지만 경제사정이 안좋아 힘들다는 얘기를 늘 듣는다”고 말했다.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도 점차 낮아지다 지난 6월을 고비로 다시 상승하고 있다.
지난 8월말 현재 가계대출금은 49조2,777억원으로 이중 1개월 이상 연체금만도 1조5,114억원을 기록, 연체율이 3.07%에 달한다. 이는 6월보다 0.63%포인트 가량 높아진 수치.
경실련 고계현(高桂鉉)국장은 “서민생활지표라 할 수 있는 각종 공과금과 납부금 등의 연체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국민들이 살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현재 정부가 얘기하는 경제상황과 실제 체감경제와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송기희기자 bar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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