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오랜 적대를 청산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다짐한 것은 실로 격세지감을 갖게 하는 변화다. 가슴팍에 울긋불긋한 훈장 약장을 새긴 북한군 차수 복장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과 클린턴 미 대통령의 회담은 한반도의 냉전사가 다시 씌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인 조 부위원장이 백악관을 예방하면서 평복대신 군복차림으로 갈아 입은 것에서 북한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다. 이른바 ‘선군(先軍)정치’를 앞세운 북한이 미국과 오랜 군사적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중점 논의할 것임을 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동시에 북한군부가 대미 화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제스처로 풀이된다.
미국 역시 조 특사를 국가원수에 준하는 경호와 의전으로 예우, 북미관계 개선의지를 부각시켰다. 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또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화한 북한의 대외 개방정책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화해교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확신한다.
북한과 미국은 이번 최고위급 회담을 통해 관계 정상화의 걸림돌을 제거키로 합의했다. 우선 미국의 가장 큰 관심사인 미사일 개발 문제에 대해 조 특사는 ‘조건부 개발포기’로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인공위성발사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경우,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의심받는 대포동 미사일의 개발을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한미군에 대한 북측의 입장변화다. 조 특사는 “동북아 지역안정을 위한 미국의 역할을 기대한다”며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사실상 양해했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은 이미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 밝힌바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김 대통령의 전언을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몰아붙이며 믿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북한은 미국에 이어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일본과의 정상화는 북한에 대미관계에 못지않은 이해가 걸렸다. 낙후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청구권 자금을 비롯한 일본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북한과 일본이 이성적 대화를 통해 이른 시일에 관계 정상화를 이루기 바란다. 북한이 미·일과 적대관계를 해소,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등장하는 것은 곧 한반도의 전쟁위험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남과 북이 냉전체제의 질곡을 끊고, 민족이 공존공영하는 평화체제를 굳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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