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부의 2인자인 조명록 특사의 방미는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끌만하다. 무엇보다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돌발사건으로 인한 방미 취소 뒤 한달 만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더욱이 보통 외교교섭에서 군부 실력자가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이는 북한이 미국과의 문제는 정전협정에 기초한 `잠정적 전쟁 중단'이라는 군사적 대결상태를 푸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그 실마리는 국방부문에서 풀어야 한다고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군이 과대성장한 북한의 권력구조로 볼 때 그들의 대미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 대내적으로도 군부지도자가 직접 대미관계의 돌파구를 뚫기 위해서 나섬으로써 이제 북미관계가 전쟁에서 평화로 이행해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조명록 특사를 대하는 미국의 태도나,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라는 그의 신분으로 볼 때 이번 북미 고위급 회담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리라는 것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문제는 이미 가닥이 잡혔고 향후 연락사무소 개설과 미국이 내놓은 북한 미사일문제 해법인 `페리프로세스'에 기초한 북미 미사일 협상 등에서도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조명록 차수의 방미를 계기로 북미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북한과 미국이 양국정상화를 위해서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양국이 수교로까지 나아가는 길에는 아직 북한이 미사일 개발 및 수출을 포기해야 한다는 미국의 절대적 전제조건이 가로막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페리프로세스'에 따른 협상에 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에게 미사일 개발포기는 미사일 주권의 포기이자 미사일 산업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대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아마 이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협상의 속도가 향후 한반도 평화와 북미관계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조명록 차수의 방미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자못 크다. 혹자는 조명록의 방미를 계기로 북한이 남한을 제치고 북한과 모든 문제를 풀려는 이른바 `통미봉남'정책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기우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1999년 초부터 심각한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전방위적인 대외관계 개선을 추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대남관계와 대중국관계, 대미관계를 3개의 중심축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특히 북미관계의 개선이 한국정부의 일관된 주문사항이었으며, 북한이 군사문제에 있어서도 이미 남한과 국방장관회담을 정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의 의도를 `통미봉남'과 연결시키는 것이 무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조명록의 방미는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현재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을 통한 관계 개선과 함께 국제적 수준에서도 북미대결로 상징되는 대결구조를 평화구조로 이행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즉,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관계와 함께 국제관계에서도 적대관계의 해소와 냉전문화의 종식이 필요한데, 북미관계의 진전으로 바로 국제적 화해의 청신호가 켜진 셈이기 때문이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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