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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막전막후] 연극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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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막전막후] 연극 '악몽'

입력
2000.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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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한바탕 악몽은 아닐까?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악몽'에는 엽기 취향, 아니면 잔혹 취향이 질펀하다. 깔끔한 논리적 추론을 바란다면, 잘 짜여진 정통극을 택해야 할 것이다. 어짜피 이 연극은 논리와 추론이 세상을 지배하는 코드가 되길 포기한 지금, 어느날 문득 생활속으로 틈입한 엽기와 탈논리를 보여주고 싶으니까.잠 못 이루는 밤, 동거녀를 방에 두고 비디오를 빌리러 나갔다 황당한 사건들과 맞닦뜨리는 30대 초반의 평범한 남자. 낯선 취객들로부터의 폭행, 타고 가는 택시의 추락, 간신히 타게 된 막차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에 소수의 관객들만이 열광한다는 영화 `럭키 호러 픽쳐 쇼'의 연극 버전인가. 막 내리자마자, 모든 배우가 나와 신나는 테크노에 맞춰 춤을 춘다. 어느새 음악은 테크노에서 스윙으로 바뀌어져 있다. 그렇다한들 무슨 상관이랴. 이미 모든 관객은 일어나, 음악에 맞춰 신들린 듯 박수치기 바쁜데.

경박하던 테크노가 어느덧 기괴한 선율의 스윙으로. 탈바꿈했는데도 관객에겐 중요치 않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특정 다수를 싸잡아 흥분케 하는 컬트가, 가득 메운 관객을 묶어 놓고 있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나만 왜 이리 재수가 없는걸까. `머피의 법칙' 또는 `음모 이론'은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소시민에게 주어진 마지막 위안처럼, 이렇게 바짝 다가와 있다.

온갖 잡귀들의 한 바탕 소동, `흉가에 볕들어라'를 성황속에서 막 끝낸 바탕골소극장은 `악몽'으로, 컬트의 제의장이 돼 간다. 거의 매일 150여 관객이 객석을 가득 메운다. 작 연출자 선욱현씨는 “비상식적인 세상, 차라리 악몽은 상식으로 통하는 길”이라 말한다. 이 연극은 그래서, 그만그만 착하게 사는 소시민들의 자기 위안이다. `어짜피 세상은 비합리적이지 않은가'하는 위악적 자기 만족이다.

이 연극, 단 하나의 위안. 애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민구에게 우연히 만난 청소부가 하는 말. “사람마다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어떤 게 있지. 그래, 그거 붙들고 사는가야. 늦지 않았어.” 15일까지.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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