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앞. 가로등 사이사이마다 온갖 교통안내 표지판이 들어차 있다.`올림픽대로 10톤이상 화물차 통행금지' `전방 500m 과적차량 단속중' `속도 줄이시오' 등…. 이 정도면 교통소통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운전자들의 정신을 빼놓기 십상이다.
길 건너편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 `절두산 순교성지' `외국인묘지공원'이라는 같은 내용의 표시판 3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교통안내표지판이 쓸데없이 너무 많고 무원칙하다는 지적이 많다. 온갖 표지판들이 제각기 설치되고 같은 교통시설물도 과다ㆍ과밀설치돼 도리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예산낭비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실태
.서울 강변북로 동부간선도로 진입로에는 `우회전 금지' `천천히' `80미터(제한속도)' `과속차량 단속' `급커브길' `화물차 중량제한' 등 표시판이 1m간격으로 10여개가 늘어서 있다.
올림픽대로 성수대교 남단에는 `주차제한' 등 표시판 5개가, 강변북로 광진구 구의동 방면과 서강대교ㆍ마포대교 사이에도 각각 10여개씩의 표시판을 매단 쇠기둥들이 줄지어 있다.
이들 옆에는 아무런 부착물도 없는 `매끈한' 가로등이 머쓱한 모습으로 서 있다.
`못자리판'을 방불케 하는 동일 시설의 과다ㆍ과밀설치도 큰 문제. 천호대교 북단 오른쪽 램프에는 100m내에 점멸등 30여개가 늘어서 있고, 강변북로 동부간선도로 진입부분에는 1m 간격으로 시선유도표지가 설치돼있다.
동부경찰서 앞에는 일방통행표지 3개가 `밀착'됐고, 인근 동자초등학교 앞에도 `학교 앞 천천히' 표시 3개가 붙어있어, 뒤 표시판 내용은 잘 보이지도 않는 지경이다.
도로 안내표지는 동ㆍ서부 간선도로,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도로 등 서울시내 5대 자동차전용도로(연장 171.6㎞)에만 무려 600여개가 밀집, 설치돼 있다.
■문제점
이 같은 현상은 도로시설물의 설치ㆍ관리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로 이원화 해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현행 법상 도로안내 표지판ㆍ가로등ㆍ시선유도표지ㆍ반사경ㆍ시선유도봉 등은 지자체에서, 신호등과 각종 안전표지(주의ㆍ규제ㆍ지시ㆍ보조) 등은 경찰에서 각각 설치ㆍ관리하고 있다.
국회 행정자치위 이재선(자민련.대전 서을) 의원은 10일 “서울시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가로등ㆍ각종 안내표지의 개별 설치로 인해 낭비된 혈세가 70여억원에 달하고, 동일 교통시설물의 과다ㆍ과밀설치로 인한 예산낭비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의원은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가로등ㆍ각종 표지판의 `통합주(柱)' 설치가 가능한 곳이 내부순환도로 70㎞ 구간에만 102곳”이라면서 “시민들의 혼란과 시각 피로만 높이는 과밀시설을 없애고, 통합주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예산감시위원회 이영란(29) 간사는 “도로시설물의 중복관리는 부처이기주의와 예산낭비의 전형적 사례”라면서 “예산집행의 효율과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 일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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