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동포가 굶주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와야 한다. 이의가 있을 있을 수 없다.그러나 대북 식량지원에는 말이 많다. “왜 쉬쉬하나” “왜 서두나” “일방적 쌀 퍼주기 아니냐”는 것이 그 요지다. 남북 밀약설이 나돌고, 무슨 평화상(平和賞)인가에 관련된 뒷 공론마저 떠돈다.
좋은 일 하자는데, 왜 이럴까. 까닭은 정부의 정책행태에 있다.
대북 식량지원 문제가 처음 거론되기는 8월말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평양)에서였다. 우리 측은 “식량지원에 대한 국민의 의사를 묻고, 지지를 확인하여” 지원 규모 등을 결정하겠노라고 했다.
사실상 식량지원을 약속한 것이지만, 그 뒤 정부가 국민의사를 묻거나 지지를 확인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던가.
오히려 정부는 다음 달 26일 경제실무회담(서울)에서 식량지원 7개항을 합의해 놓고도 한 동안 쉬쉬했다. 후문인 즉, 북측이 합의 공표를 요구했으나, 우리 정부가 마다 했다는 것이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10월4일 우리 수출입은행과 북의 조선 무역은행 사이의 식량차관 계약서가 판문점에서 교환됐고, 다음 날 중국 옥수수의 1차 선적분이 남포항에 도착했다. 어느틈에, 양곡 반출 대행업자(태국쌀 20만톤=LG상사, 중교? 옥수수30만톤=독일 토트펠트사)의 선정, 사업자 승인과 양곡 반출 승인, 양곡의 구매 등을 다 마쳤던 것일까.
이러니, 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대북식량차관 계약의 당사자가 수출입은행인 점도 의아해 한다. 그러나 그 설명은 간단하다. 수출입은행은 남북 협력기금의 운용ㆍ관리 수탁자(남북협력기금법제7조②)로서, 위탁자(정부)의 의향을 받들어 계약을 맺은 것 뿐이다. 그 내용은 차관 한도 1억달러, 연(年)이자 1%, 10년 거치ㆍ20년 균등상환 조건 등이다. 일본 대북 차관의 이자 2~3%, 동ㆍ서독 재정차관의 이자가 리보 금리+1%, 거치기관 없이 5년 균등상환 조건이었던 것과 비교가 된다.
그러니까, 이번 대북 식량차관의 실질 당사자는 우리 정부다. 차관이 잘 못 되었을 때의 책임도 정부 몫이다. 이 점 6공 때의 대(對)러시아 30억달러 은행차관과는 비슷하면서 다르다. 그래서 제기되는 또 하나의 논점은, 이 식량차관이 헌법58조에서 말하는 “예산외에 국가 부담이 될 계약”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해당이 된다면, 의당 국회의결을 거쳐야 한다. 야당은 그렇게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는 정부ㆍ여당의 반론이 거세고, 그 반론에 일리가 없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ㆍ야 영수회담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토론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헌법 규정을 따져서 국회 의결을 받거나 말거나, 정부는 모든 시책에 대한 설명책임(accountability)를 면할 수는 없다. 그 설명을 국민을 십분 납득 시킬 수가 있어야 하고, 그 설명의 장으로서 국회가 있다. 그런 뜻에서 이번 영수회담이 국회 남북공동위원회를 가동키로 한 것은 평가할만 하지만, 정부ㆍ여당 측에, 그 사이 대북 정책에 관한 설명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느냐는 자성이 앞서야 의미가 있다.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의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이후 남북관계를 걱정하는 말을 했었다. 이에 대하여 김 대통령은 “내 임기가 28개월 남았으니, 그동안에 남북 회해의 기틀을 잡으면 된다”고 댓귀했더라고 한다.
정상회담의 이 대목은, 정권 재창출 음모 운운하는 시비를 부르기도 했지만, 남북 회해의 기틀이 대통령 임기 이후까지 이어지 도록 다지는 일이 지금의 과제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자면, 대북정책은 정부 독주나 대통령의 개인기(個人技)가 아닌, 국민적 지지에 바탕해야 하고, 그럴만 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민이 납득하고 안심할 수 있는 정책은 계속성을 지닐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욱, 뜻 있는 정책일수록, 정부의 설명책임이 요긴함을 강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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