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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둑, 한국세 침몰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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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둑, 한국세 침몰위기

입력
2000.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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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호는 끝내 일본 열도에서 침몰하고 마는가? 불꽃 같은 투혼과 끈기로 `현대 바둑의 종주국' 일본을 평정했던 한국 바둑. 그 찬란했던 대일 정복사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십수년 동안 일본 바둑의 중심에 서 있었던 한국 기사 군단은 이제 대만세에 쫓기고 일본 토착 세력에도 밀릴 정도로 급격히 퇴조하고 있다.위기의 진앙지는 재일 한국바둑의 기둥 역할을 해 온 `투혼의 승부사' 조치훈 9단. 지난 해 한국인 후배 조선진 9단에게 혼인보(本因防)를 빼앗기며 대삼관(大三冠ㆍ기세이, 메이진, 혼인보 3대 타이틀을 동시 보유한 상태)을 상실한 조치훈은 올 초 대만 출신 왕리청(王立誠) 9단에게 랭킹 1위 기세이(棋聖)마저 맥없이 빼앗기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하게 쥐고 있는 메이진(名人) 타이틀마저도 수성(守成)은 이미 물건너 간 분위기다. 조9단은 지난 달 27, 28일 일본 교토(京都)시에서 벌어진 제25기 메이진전 도전7번기 제3국에서 `한국기사 킬러'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에게 167수만에 백으로 불계패, 3연속 불계패의 수모를 당했다. 이날 패배로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대삼관에서 7대 기전 무관(無冠)의 설움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조 9단의 운명을 겸? 정지을 제4국은 11, 12일 속개되지만 바둑계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국내 바둑계 관계자는 “벼랑 끝에서 엄청난 투혼을 발휘, 대역전극을 이끌어내는 것이 승부사 조 9단의 전매특허이지만 최근의 부진한 바둑내용으로 볼 때 예전 같은 투혼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지난해 요다 9단의 도전을 4대1로 제압한 바 있는 조 9단이 같은 상대에게 힘없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뭔가 심상치 않은 `내부 문제'가 생겼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선배의 퇴조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기대주 조선진 9단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선배로부터 혼인보를 빼앗으며 일약 정상급 기사의 반열에 오른 그는 불과 1년 만에 대만의 복병 왕밍완(王銘琬) 9단에게 타이틀을 빼앗겼고, 국제 무대에서도 연전연패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반면 한국세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대만세와 일본세의 성장은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 바둑계의 `샛별' 야마시다 게이코(山下敬吾) 7단은 최근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9단을 누르고 일본 7대 타이틀인 고세이(碁聖)를 쟁취,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약관 21세의 야마시다 7단의 타이틀 획득은 1976년 조치훈 7단(당시)이 20세로 제24기 왕좌(王座) 타이틀을 딴 이래 최연소 타이틀 획득 두 번째 기록. 여기에다 중견급에 속하는 요다 9단이 기세이 왕리청, 혼인보 왕 밍완 9단 등 대만계 중견 기사들의 정상 입성에 힘입어 메이진전을 거머쥐게 되면 일본 바둑의 판도는 한국 독주에서 일본과 대만의 2파전으로 급격히 기울어질 공산이 크다.

일본은 이른바 7대 기전에 대한 공식 서열이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매년 타이틀 판도의 변화에 따라 바둑계 서열~m 바뀌고, 이에 따라 모든 예우가 달라지는 것이 오랜 전통. 연간 상금이나 타이틀 보유 수에 상관없이 랭킹 1위 타이틀인 기세이 보유자가 무조건 랭킹 1위가 되고 다음에 메이진, 혼인보 순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아무런 타이틀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한국세는 차별대우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한국 바둑은 그나마 막내 류시훈 7단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류 7단은 9월 21일 일본 랭킹 5위 기전인 제26기 텐겐(天元)전 도전자 결정전에서 선배 조선진 9단을 따돌리며 96년 혼인보전에 이어 4년 만에 도전기에 진출했다. 류 7단은 준결승전에서도 조치훈 9단을 불계로 꺾어 이번 천원전에서 한국 출신 기사들을 차례로 꺾는 진기록을 세웠다. 현 텐겐은 노장 고바야시 고이치 9단. 루 7단이 과연 천원위에 당당히 등극, 침몰하는 한국호를 구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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