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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엠바고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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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엠바고의 덫

입력
2000.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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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유럽축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유고팀은 8강 진출 성적을 올리고도 경기상금(賞金)을 받지 못해 애를 태워야 했다. 상금 지급 대행업무를 맡은 스위스금융당국이 55억원의 상금 송금을 보이콧했기 때문이었다. 유고가 서방의 경제엠바고(무역금수) 대상국이어서 돈을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도록 제한을 받고 있다는 것이 스위스측의 해명논리였다.■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당시 유고 국민들의 가슴에 복받쳤을 ‘설움’이 어떠했을지는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바로 이같은 경제제재와 그에 대한 국민적 설움이 어떤 형태로 발로될 것인가가 지난 1년여간 서방측 내부의 최대 논쟁거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경제 엠바고 효과’에 대한 의문이었던 것이다. 대규모 공습과 철두철미한 무역봉쇄에도 불구하고 밀로셰비치 정권이 요지부동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경제제재를 부분 완화하는 전술적 수정안까지 한때 대두됐던 것을 보면 서방측도 꽤나 초조했던 모양이다. “유고의 경제붕괴가 결코 쿠데타나 민중봉기로 이어지지 않을 것” “세르비아인들은 이미 오랜기간 헐벗고 배고픈데 단련이 되어있다”는 등 전문가들의 심리분석이 이같은 초조감에 더욱 불을 질렀다. 실제로 유고 국민들은 1990년대 보스니아전쟁 당시 수년간 혹독한 경제엠바고의 암흑생활을 이미 이겨낸 바도 있었다.

■‘발칸의 여우’라는 밀로셰비치가 끝내 실각했다. 서방측도 딱히 자신할 수 없었던 경제제재가 결국 주효한 것일까. 그 보다는 오히려 밀로셰비치 자신이 엠바고의 ‘역설적 덫’에 걸린게 아닌가 싶다. 금수조치속에서 1년여나 버텨오면서 ‘엠바고쯤은 더 이상 나를 밀어낼 수 없다’는 자만과 오판이 그에게 조기 선거실시라는 자충수를 두게 한 것 같다. 자유선거를 실시하면 석유금수를 풀겠다는 미국의 달콤한 제안이 애초 함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국민들은 춥고 배고픔에 진저리쳐지는 악몽의 겨울을 다시 앞두고 있었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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