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가 드디어 들리기 시작한 날은 누군가가 은퇴선언을 하던 날이었다. 하얀 얼굴에 고운 머릿결을 가진 한 젊은 남자 때문에 TV 화면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었다. 가수로 추측되는 그 남자는 “창조와 고통, 자유와 도전” 등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몇 마디 말을 하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나는 전문적인 음악지식이 결핍된 사람이다. 록이 어떤 것인지는 대충 알고 있지만 핌프록(PIMP ROCK)이나 콘(Korn),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등은 들어본 적도 없다. 록이라는 영어도 중국에서는 요우꾼(搖滾)이라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마저도 생소하게 들렸다.
어쨌든 나에게 요우꾼을 알려준 추웨이찌엔(崔健)이 고맙다. 중국인 성격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록을 그는 중국의 것으로 만들었다. 음역(音域)과 성량(聲量) 모두 떨어지면서도 서양음악을 `모방'하고 있다는 질시 속에서 추웨이찌엔은 20대의 촛m 은 나이에 `중국 록의 아버지'라는 거대한 칭호를 가졌다.
`추웨이찌엔 현상'이 연상되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서태지와 그 음악에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서태지 이전 시기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있어 그이? 재귀(再歸)는 신인 등장과 다름없었다.
약속을 어긴 컴백, 소위 전략적인 상술, 안티서태지운동, 음반판매량을 둘러싼 팬클럽 공방…, 이런 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중요하지도 않다. 나는 다만 그 지극히 동양적인 몸매와 목소리에 무엇인가 남다른 것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떤 가사는 밋밋한 글로 남느냐 생동한 음악으로 듣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진다. `생각이 있는' 가사와 그에 어울리는 사운드, 그리고 만든 이의 사상과 재능이 녹아있는 그런 음악이, 음악에 몰입하면서도 명철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두뇌가, 굳이 남성적인 매력을 표방하지 않는 그런 중성적인 음악자세가 마음을 끈다.
음반가게에서 서태지의 음반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강렬한 표지 디자인인 정체불명의 CD를 직감으로 한참동안 만지작거렸지만 결국엔 자신4?이 없어 낮은 소리로 서태지의 음반을 달라고 요구했다. 무심히 지켜보는 주인 앞에서 괜히 난처했다.
올림픽경기장에 가서 서태지의 음악과 함께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흔들어질 때 또 난처했다. 서태지를 좋아한다는 내 학생들 앞에서 체신을 잃고 “나두!”라고 실수했을 때 역시 난처했다. 그러나 나는 그 난처함이 신선하다.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잊어버리게 하는 그런 신선함이 신선하다. 한국에 살면서 음반을 사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추웨이쿠웨이후아
안양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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