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축출을 눈 앞에 둔 유고사태는 무혈 시민 혁명의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밀로셰비치는 야당의 시민 불복종운동으로 촉발된 전국적인 정권퇴진시위를 자신의 물리적 통치기반인 군경을 통해 막아보려 했으나, 이들마저 중립을 지키거나 시민 편에 가담, 통치기능을 상실했다.
유고의 통치공백은 국내외적으로 대통령당선자로 인정받고 있는 세르비아 민주야당(DOS)의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를 중심으로 메워져 나가면서 민주화 작업이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코슈투니차는 6일 “정치적인 보복은 없을 것”이라며 “민주적인 문화를 세워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어 대선투표에 대한 재검표를 실시한 뒤 권위주의 체제 유지의 도구였던 헌법 개정과 1년 6개월 후 총선 실시 등 민주화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와함께 유고의 대 서방 관계도 급속히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선거 전부터 야당이 집권할 경우 제재조치 해제와 경제지원을 약속했으며, 밀로셰비치 정권이 무너진 이날 일제히 이를 거듭 확인했다.
밀로셰비치는 집권기간 동안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qm 우면서 4차례의 전쟁과 군경을 이용, 반체제 인사들을 철저히 억눌러 왔다.
그러나 지난해 코소보 전쟁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하고, 그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부정부패가 속속 드러나면서 광범위한 민심이반을 불렀다.
유고 정국은 코슈투니차가 무난히 권력을 장악, 내정의 안정을 얼마나 매끄럽게 추진하느냐에 달려있다. 특히 권력의 기반인 군경과 검찰을 밀로셰비치의 측근들이 장악하고 있는데다 의회마저 구 여권세력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코슈투니차가 개혁 과정의 걸림돌로 작용할 이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내정이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구성 등 향후 정권인수 과정에 놓인 과제인 셈이다. 그러나 DOS는 6일 군경과 경제 등 주요 국가업무처리를 담당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즉각 가동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어 혼란 가능성이 낮아보인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몬테네그로와의 관계 설정도 중요한 변수다. 몬테네그로는 밀로셰비치의 정책에 반발, 지난 대선에 참여하지 않는 등 지난 2년동안 세르비아와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돼 왔었다.
코슈투니차는 몬테네그로의 제1당에 총리직 할당을 약속하는 등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지난해 코소보 전쟁으로 20년 이상 후퇴한 경제 복구, 코소보에서 나타난 인종갈등 등 숱한 급선무를 해결해야 한다.
대 서방관계에서도 밀로셰비치와 그의 추종세력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진폭이 달라질 수 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野 코슈투니차는 누구
'대학교수에서 민주투사, 대통령까지'
5일 무혈 민중혁명으로 동구권의 마지막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종식시킨 야당 연합의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56)후보의 인생 역정은 유고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코슈투니차는 1974년까지만 해도 베오그라드 대학 법학과에서 학생을 가리키던 평범한 교수였다. 단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그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는 것 정도.
하지만 당시 그의 인생은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정부를 비판한 혐의로 투옥됐던 같은 대학의 원로 교수를 옹호하다 해고된 것이다.
코슈투니차는 그 때부터 변호사의 길을 걸으면서 정치권에 몸을 던졌다. 그는 철저한 반밀로셰비치 노선을 걸어 1989년 정부의 반체제 인사 복권조치때 유일하게 빠질 정도로 밀로셰비치에게 요주의 인물로 부각됐다.
특히 유고 정치인 중 부패스캔들에 연루되지 않은 몇 안되는 정치인이라는 그의 청렴성은 이번 대선에서 밀로셰비치의 독재와 부패에 신물이 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햐? 다. 그는 지금도 부인 조리차와 함께 베오그라드의 중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코슈투니차는 1989년 야당인 세르비아 민주당을 공동 창당했으며, 1992년 세르비아 민주당을 설립, 전국적인 야당 지도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록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이지만, 밀로셰비치의 13년 재임기간동안 한차례도 제휴하지 않을 만큼 확고한 신념을 지녔다.
그의 민족주의 성향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는 코소보 사태 때 세르비아인들의 입장을 지지했으며, 유고 전범재판도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가 집권하면 밀로셰비치 보다 더욱 철저한 민족주의 성향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한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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