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악을 뜻하는 한국어가 있다면, 그것은 세계화일 것이다.” 한국인의 세계화에 대한 서양인의 이 말은 뜬금 없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척화비를 세우며 쇄국정책을 펴던 100여년전 나온 얘기 같기도 하다.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가 논의하는 주제는 한국인의 성격이나 심리에 대한 일반적 분석이 아니다. 세계화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책이다. 이 책은 세계화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과 태도, 그리고 그 밑에 깔린 문화적 배경을 분석한다. 저자인 프레드 앨퍼드 교수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미 메릴랜드 대의 정치학과 교수다.
세계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심리분석은 일반적인 이야기로 흐르겠지만, 이 책이 특별히 그것을 `악'의 개념과 연결짓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하지만 한국인은 악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로 세계화를 대한다는 저자의 말에 선뜻 동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세계화란 사회과학적 개념을 악이란 철학적 개념으로 풀어감으로써 논의는 철학,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을 넘나들며 복잡하게 전개된다. 저자는 우선 한국인의 심리에 악이 없다는 점에 착안한다. 선과 ?악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대비되는 동양사상의 특징으로 흔히 말해지는 것이 조화로운 일원론적 세계관이다.
문제는 현실적 삶은 그렇게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세금을 떼어먹고, 기업이윤이 로비자금으로 쓰여지고, 갈등과 대립은 그칠 줄 모른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인은 악을 실체로서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죄가 밉지 사람이 미우냐”는 식으로 악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악의 당사자, 책임자가 모호해진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비판이 따갑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일제에 병합된 경험을 국치라고 규정하면서도 책임자를 찾아내지 못한 사실만 해도 그렇다.
악을 규정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악을 규정할 경우, 오밀조밀 얽혀 있는 관계망 아래서 자신의 소중한 것마저 잃어버릴 여지가 있다는 것, 본질적으로 말하면 스스로에게 타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침묵 속에 침참해 있는 한국에서의 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악에 대한 태도가 세계화에 대한 공포와 유사하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외국문화 아래서 스스로에게 타자가 돼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여기서 저자가 권하는 것이 `계몽'이다. 어둠에 빛을 준다는 식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서는 `대화로서의 계몽'이다. 그 때 새로운 가치창조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한국인 250여명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정치인, 학자,학생 뿐 아니라 탑골 공원의 노인들, 서울역의 노숙자들과도 만나 한국의 문화적 심층을 파헤치려고 했다. 한국인의 악에 대한 심리분석이 때로 날카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면도 있지만, 세계화와 연결짓는 것은 다소 무리?한 논리 전개란 점을 감출 수는 없다. 특히 IMF 체제 직후 이루어진 인터뷰란 점도 그렇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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